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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Mar 01. 2024

문장을 만나다.

약속이라도 했던 가?

책을 읽다 보면, 이거다 싶은 문장들과 만나게 된다. 49년 전 내 삶이 막 출발하고 난 후 시간의 흐름을 건너고 건너 만난 문장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필연적으로 다가왔다. 문장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고, 책에서 책으로 전해지다가 마침내 내가 선택한 책 위에 가만히 내려앉아 나를 기다렸다. 박완서 선생님의 문장이 그랬고, 이후론 공지영 작가와 김연수 작가님을 비롯한 수많은 작가의 책에서 만난 문장들.  만남은 짧았지만 가느다란 대화는 길게 이어졌다.. 어째서 너 인가? 란 물음에 답은 없다. 문장이 나를 기다렸고 나는 알아봤다. 문장 역시 반가워한다. 그리곤 빠르게 내 노트로 복사되어 왔다.  



<읽는 생활, 임진아>의 " 오늘 다가온 잠잠한 마음은 오늘의 단어가 될 것이다" 같은 문장이 먼저는 독서 노트에 다음번엔 온라인 전자 노트에 담긴다. 그렇게 쓰인 문장이 내 마음을 차지하게 되면 그것이 작은 씨앗이 되어 나에게도 이야기가 자란다. 맞아. 오늘 나에게 다가온 잠잠한 마음이 있었지. 아이들과 함께 먹으려고 찾아간 분식집에 손님이 너무 많아 2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직원 분 말에 투덜거리지 않고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답했던 마음, 그럼 잠시 다녀올게요란 대답을 남기고 분식집을 나와 걸었던 내 발걸음이 무척이나 좋았던 마음. 이렇게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저절로 주어진 것에 감사해 차가운 바람에도 식혀지지 않았던 훈훈한 마음까지. 마트에서 간단히 사 온 물건들을 집에 가져다 놓고 다시 나오면 되겠구나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짐을 내려놓고 잠시 몸을 녹인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우중충한 하늘이라 씩씩한 기운이 솟아나지 않았지만, 되돌아가는 길에 걷고 있는 내가 또 좋았다. 이렇게 또 걸을 수 있잖아 하는 소소한 마음. 아무 걱정 없이 걷는 길의 소중함 같은 거.

 

그것이 오늘의 문장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한 편의 새로운 이야기가 되어 주었다. 문장을 만나는 일은 그래서 삶을 만나는 일과 같다. 단어를 통해 삶을 배우고 기억하고 만들어 가는 안희연 작가처럼 나 역시 그렇게 내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스쳐 지나치는 만남이라도 글이 되면 귀해진다. 문장을 만나는 경이로운 순간에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서로를 응시하고 있던 시간들이 쌓였다. 이제 조금씩 그것들을 풀어내어 내 안에 안착시키고 싶다. 우리의 만남이 더 귀해지도록, 우리가 서로를 더 오래 기억해 주도록 조금 애써보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이 글의 시작이다.

 

같은 풍경 속에 머물러도 각자가 보는 풍경은 다르다. 문장도 그렇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밑줄 그은 부분이 다르고, 감동받은 페이지가 다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삶에 따라 문장도 다양해진다. 그렇게 서로가 바라보는 세상을 조금씩 공유해 보는 일로 마음을 나눠보겠다. 내가 보는 세상이 당신과 닮았다면 다행이고, 우리가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면 그것 또한 다행일 테다. 많고 많은 세상이 있어서 우리가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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