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꺼져버린 컴퓨터 앞에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컴퓨터가 켜지지 않는다.
사무실 형광등도 켜지지 않는다.
전자 잠금장치가 걸려 있어서 사무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화장실이 사무실 안쪽에 있다는 것.
그가 이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남아있었던 건 내일까지 끝내야 하는 프로젝트 보고서 작성 업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집돌이인 그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일을 하였다.
그리고 그가 거의 다 해갈 무렵, 이 사달이 났다.
몇 시간을 공들여 작업한 혼신의 작업이 날아갔을 때, 그의 의식은 혼란을 겪었다.
그는 큐블러 로스(Kubler Ross)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고스란히 겪었다.
1. 부정: 어? 설마? 그럴 리가? 꿈인가?
2. 분노: 아, XX…. 하필이면 내가 작업하던 중에! 어떤 새X가 정전을 일으켰어!!
3. 타협: 하나님, 제발 제가 세이브를 했기를…. 자동 세이브가 되어있기를….
4. 무기력: 하…, 다 때려치우고 그냥 집에 갈까…?
(그리고 그는 이때 집에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더욱 절망한다.)
5. 수용: 빙글빙글
(아무 생각 없이 의자 위에서 돌면서 그저 정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렇게 정전이 되고선 3시간이 지난 새벽 4시 45분.
인간이 가장 미치기 쉬운 시간이다.
그래서였을까?
정말 우연히.
아무 생각 없이 혼잣말로.
그는 외쳤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그의 머리가 전구처럼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