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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언 Aug 25. 2020

붉은색

“오빠. 이제 좀 구분이 돼?”    


미치겠다. 내가 보기엔 그냥 전부 ‘빨간색’이다.    


여자들은 눈에 RGB나 CMYK 색상이 수치로 보이나? 명도 채도 수치 구분하는 필터가 있나? 저게 어떻게 전부 구분이 되지?    


“레드 계열도 얼마나 많은 색들이 있는 줄 알아? 맑은다홍, 코랄레드, 살구레드, 레드오렌지, 체리레드, 버건디, 버건디레드, 레드브라운… 어휴 정말 얼마나 많은데.”    


“그래그래. 붉은색, 뻘건색, 빨간색, 붉으죽죽한 색, 누런 붉은색, 푸른 붉은색, 분홍빛 붉은색, 핏빛 뻘건색….”    


“뭐야? 지금 비꼬는 거야? 보는 만큼 보인단 말이야. 노력 좀 해! 그런 눈으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대?”    


-아니, 지금까지 살면서 별다른 불편 없이 잘 살아왔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꾸욱 눌러 삼켰다.     


결혼까지 약속한 사랑하는 여친과 싸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내가 색상표 줄 테니까 앞으로 색들 잘 좀 구분해!”    


그녀는 가방을 뒤적이더니 나에게 색상 띠 같은 것을 하나 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멘붕이 왔다.    


“이게 정말 다 다른 색이야?”    


“당연하지! 눈 훈련 좀 해, 오빠.”    


내 눈에는 어떻게 봐도 그냥 빨간색 띠 한 장이다.    


이걸 어떻게 외우나…. 30년 인생 최대의 고비가 찾아왔다.    



Ad Reinhardt <Abstract Painting, 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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