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지언 Jan 18. 2016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어울리는 공간

빈 공간을 부탁해! - 2. 그림에 어울리는 공간을 알아보자(5)

※이 포스팅을 읽기 전에 먼저 이 글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포스팅: 그림(명화)을 소유한다는 것의 의미

https://brunch.co.kr/@homoartcus/59



작품의 이모저모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인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입니다. 가로 152cm 세로 84cm의 이 그림은  완성되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시카고 미술관에 판매되어 현재도 소장되어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처음부터 순수 미술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삽화와 회화를 배우고 광고회사에 취직하여 광고미술과 삽화가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한 창작활동 가운데에서도 회화에 대한 열망만큼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순수 미술계에선 무명에 가까웠던 호퍼였기에 40살이 넘도록 회화작품은 단 한 점도 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뉴욕에서 함께 미술을 공부하던 조세핀을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이후 조세핀과 그림에 대해 여러 상의를 하고 화법을 바꾸며 대중들의 호응을 얻게 됩니다.


심야의 상업지역의 작은 식당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는 모습의 이 그림은 왜인지 혼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우 외로워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레스토랑 안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저렴해 보이는 레스토랑 안의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거리는 텅 비어있습니다. 즉 그림 안의 사람들은 고독과 소외를 피해 작은 레스토랑으로 피신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의 가장 밝은 부분은 레스토랑 내부의 노란 벽입니다. 즉 이 그림의 주제는 지친 현대인들의 고독을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밝은 레스토랑 안에 들어와 있는 손님들 가운데 얼굴 표정이 밝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굳은 얼굴과 묵묵한 뒷모습만이 보일 뿐, 가장 밝아 보이는 것은 주문을 받고 있는 종업원의 모습뿐입니다.


아내 조세핀 호퍼의 말에 따르면 그림의 배경이 되는 곳은 맨해튼 근처의 어느 작은 식당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호퍼 자신은 이곳에서 대도시의 고독을 보았다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이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도시 풍경 가운데 덧없는 무상을 느낀 호퍼는 자신의 기분을 그림에 표현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수많은 패러디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며, 또한 미국의 여러 대중문화에 말 그대로 엄청나게 차용되었습니다. 1950년대엔 미국 영화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 그림을 대상으로 시인들이 찬미시를 짓기도 하였습니다. 또 소설가 에릭 젠드레센은 이 그림에 영감을 받아 단편 소설을 쓰기도 하였으며, 이후로도 이런저런 영화의 세트로 이 작품의 배경이 재현되기도 하였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블레이드 러너의 모습에 이 작품이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면으로 사랑받은 이 작품은 그만큼 고독과 소외라는 문제가 현대인에게 강하게 다가와 있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이를 가장 잘 집어낸 그림이 바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작품의 형태적 특징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특히 가로로 긴 형태의 그림입니다. 그리고 소실점이 화면을 벗어나 왼편 멀리에 존재하고 있어 화면의 움직임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화면을 중심으로  이등분하였을 때 우측의 가게 안은 사람들이 있고, 환한 불이 켜져 있으나, 좌측의 거리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고, 색상도 완전히 어둡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그림임에도 두 가지의 느낌이 공존합니다. 밝은 색으로 인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가게 안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용무가 끝난 후에는 다시금 어둡고 쓸쓸한 도시의 밤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겨우 네 명이라는 많지 않은 숫자의 인물은 그나마 밝은 불빛이 자리하는 카페테리아 안에 응집하여 완벽히 고독하기만 할 수 있던 그림에 사람의 입김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특히 녹색과 적색의 보색 관계로 색이 이루어진 바깥 배경은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미묘하게 명시성이 높아 눈에 들어옵니다.



작품이 어울리는 공간

이 작품은 한 밤중의 조용함과 그 가운데 밤을 잊고 카페테리아에 나온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우리나라의 모든 수고하는 직장인들이었습니다. 오늘도 야근을 하며 밤을 지새우는 수많은 직장인들, 그들을 위한 그림이 이 그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작품이 주는 조용한 차분함은 정신을 집중하기 위한 공간이 좋습니다. 그래서 야근이 잦은 사무실, 혹은 자신의 책상이나 작업대 위, 컴퓨터 모니터 윗부분, 혹은 바탕화면 그 자체에 이 그림을 두면 좋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가로로 긴 이 그림은 모니터의 화면 비율과도 상당히 닮아있지요. 야근이라는 고독 속에서 혼자만이 아닌 그림 속 군중의 위로가 들려오는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는 사정상 홀로 지내는 분들의 거실이나 부엌 혹은 늦은 밤, 손님이 한적한 심야 식당의 한 편에 걸어두고 현대인의 외로움을 달래 주기 좋은 그림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