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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언 Jul 07. 2020

한 알의 마령서(감자)만이라도...

그 부부에겐 아이가 넷이나 있었다.    


부부의 가정은 화목했지만, 봉건사회 소작농들이면 으레 그러하듯 높은 세금에 허덕이며 끼니 걱정을 하기 마련이다.    


첫째는 딸이었다.     


무척 조숙하고 성숙했다. 그래서 나이가 채 차기도 전에 출가외인이 되어버렸다.     

연이어 태어난 동생들 때문이었다.    


첫째는 어린 나이에 팔려가듯이 시집을 가면서도 제 가족 걱정을 했다.     


제 부모를 닮아 그렇게 속이 깊은 아이였다.    


-그곳에서는 굶지 않고 살고 있을 거야.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딸의 안부를 기도하고 상상하는 것만이 부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둘째는 아들이었다.     


어리광쟁이였으나 13살이 되자 집안의 어려운 사정을 돕기 위해 도심지로 나가 공장을 다니고 있다.    


장남이 가끔 보내주는 생활비 덕분에 동생들이 굶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젖을 떼는 나이가 늦어 유독 제 어미의 손을 많이 탔던 아이.     


그래서 아내는 장남을 도시로 보낸 후 한동안 잠결에 아이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셋째는 많이 아팠다.    


일곱 달 만에 태어났던 셋째는 약한 몸으로도 그 생의 의지를 꺼트리지 않고 살아갔다.    


빚을 내가며 겨우 가보았던 병원에서, 의사는 이 아이가 채 3년을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부부는 셋째의 삶의 투쟁을 응원하였고, 아이 역시 이에 응답해주었다.    


아이는 무려 6년을 살아주었다.    


아이가 눈을 감기 전, 침대에서 마지막으로 고맙고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만약 부인의 뱃속에 넷째가 없었다면 부부는 아마 그때 아이와 함께 생을 달리하였을 것이다.    


넷째는 이제 겨우 세 살이다.     


셋째가 하늘나라로 가면서 자신의 모든 건강을 동생에게 주었는지, 막내는 무척 건강했다.    


셋째의 일도 있었기에, 부모는 없는 가운데 자신들이 먹을 음식마저 아껴가며 막내 아이를 키웠다.    


그런데 그 건강하던 아이가 아프다.    


부부는 막내마저 셋째처럼 가버릴까 두려웠다.    


어떻게든 먹을거리를 구해야만 하였다.    


무작정 농기구를 들고 나왔다.    


-어딘가에는 남아있는 농작물이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는.    


넓은 밭을 헤매며 몇 시간째 애꿎은 땅만 괭이로 찍어대고 있었다.    


-한 알의 마령서만이라도 찾아낼 수 있으면….    


그러나 땅은 그들의 노력을 비웃듯이 그 무엇도 토해내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절망감과 함께 부부가 포기하려고 할 무렵, 기적이 일어났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른다.    


실수로 아직 캐내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고, 들짐승들이 몰래 파묻어둔 곳에서 싹이 돋아 자란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정말로 신이 그들을 위해 내려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들은 마령서 한 무더기를 발견해냈다.    


기쁨과 감사. 환희와 감격. 안도와 평화.    


멀리서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부부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렸다.



Jean François Millet <The_Ange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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