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지언 Jul 07. 2020

전쟁, 그 끝에….

길었다.    


7년에 걸친 전쟁이 드디어 끝났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던가.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몇 명의 사람을 죽였던가.    


내 생명은 타인의 생명 위에 놓여있는 것이다.    


나는 아마 신에게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좋다. 내가 행한 일을 생각하면 그래도 괜찮다.    


다만 한 가지 소원이 있다. 이를 위해 나는 기도한다.    


-신이시여…. 죽기 전에 단 한 번만 고향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저의 영혼은 불태워져 영겁의 고통을 받아도 좋습니다. 제발 죽기 전 그녀의 모습만 한 번 보여주십시오.    


뻔뻔한 기도였다.    


내 손에 죽어간 사람들 가운데 나와 같은 바람을 가진 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아마 지금 내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그들의 저주인지도 모른다.    


겨울바람은 매섭고 흩날리는 눈꽃은 시야를 가리기에 충분하였다.    


더욱이 7년이라는 시간은 나의 머릿속에서 고향으로 가는 길을 뽑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오직 기억이 나는 것은 마을 초입의 나무와 그 앞의 십자가 상….    


거기까지만 도착하면 마을 중앙의 대성당이 보일 것이다.    


그때까지 멈출 순 없다.    


7년….    


아내는 내가 없는 7년간 건강하게 잘 지냈을까…?    


아이들은 많이 컸겠지? 내가 떠나올 때 겨우 걷기 시작했던 막내는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가족을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한없이 걸었다.    


그러나 이젠 힘이 든다.    


여긴 어디일까?    


나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걸까?    


혹시나 내 머리가 고장 나 고향의 반대편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나 걸었는데도 왜 보이지 않는 걸까?    


스치는 총탄에 맞아 무릎인대가 박살이 나버린 오른쪽 다리가 아프다.    


이젠 한계다.    


여기서 이렇게 죽게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전쟁의 망령이 나를 붙들어 무저갱의 바닥으로 잡아당기고 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속죄와 참회의 기도로 걸음을 이어간다.    


-용서해주시길. 평생 속죄하며 살아가겠소. 얼굴도 이름도 모르던 이들이여. 나를 용서해주시길….    


그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을 고개 숙여 걸어왔다.    


'용서한다.'


응?


문득 어떤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    


아아…    


나는 지팡이 두 개를 던져버렸다.    


그리고 달렸다.    


나는 내가 불편한 다리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지금이 겨울이고 눈이 쌓인 바닥에 앉으면 옷이 젖는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눈에 익은 십자가에 매달린 성자의 모습.    


그 모습 앞에서 나는 기도했다.    


나는 고향에 돌아왔다.


Caspar David Friedrich <Winterlandschaft mit Kirche>


이전 24화 한 알의 마령서(감자)만이라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