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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언 Jul 13. 2015

조선의 모던보이, 신윤복

申潤福, 1758?~?

미인도
“그림이란 무엇이냐”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소설 ‘바람의 화원’ 中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선 한동안‘신윤복앓이’라고 할 정도로 신윤복의 인기가 급상승하게 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소설가 이정명의 작품이자 동명의 드라마인 ‘바람의 화원’과 영화 ‘미인도’가 있었죠.

어찌하여 갑작스레 많은 매체들이 동시적으로 신윤복을 하나의 강렬한 문화코드로 다루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당시 문근영, 박신양, 김규리 등의 인기 배우들이 연기한 조선시대의 화원 화가들은 그야말로 멋들어지고 매력적으로 묘사되었고 이는 대중들에게 크나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책을 봐도 신윤복, 미술관에 가도 신윤복, 드라마를 봐도 신윤복, 영화를 봐도 신윤복)


이러한 신윤복과 미인도 열풍은 미인도를 소장하고 있는 당시 아직 DDP로 옮겨지지 않았던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을 대중의 관심사 안으로 끌어들였으며, 이전에는 소위 ‘아는 사람들만 알던’ 간송미술관이 그 이후로는 개관 시기에 아침 일찍 가지 않으면 수 백 미터가 넘는 줄을 서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인기 미술관이 되었습니다.

(간송미술관 전시를 꼭 봐야 하는데, 줄을 보고 좌절하는 중)


그러나 현재의 인기로 보아 신윤복이 활동하던 당시에도 유명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오히려 신윤복은 문헌상으로는 그 활동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든 화가였죠.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매일매일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승정원일기]라던가, 조선 시대 왕들의 재위 기간 동안 일어난 일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편년체의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 그 어디를 뒤져보아도 신윤복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진짜 실존했던 사람 맞나??)


같은 시기의 화원 화가였던 김홍도가 위의 문헌에서 언급되는 것에 비교하면 참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나마 찾아볼 수 있는 기록으론 오세창의 저서 [화사양가보록]과 [근역서화징]에서“자는 입부(笠父) 요, 호는 혜원(蕙園)이니, 고령(高靈)인이다. 신한평의 아들이고 풍속화를 잘 그렸다.”라고 짧게 언급되어있을 뿐입니다. 성호 이익의 손자인 이구환은 그가 “마치 방외인(속세를 벗어난 사람) 같고 여항인(시정인)들과 어울리며 ‘동가식서가숙(동쪽 집에서 밥을 먹고 서쪽 집에서 잠을 잔다는 뜻으로,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하는 떠돌이 삶을 의미한다.)’하면서 지낸다.”고 했습니다.

(술_먹고_개가_되어_달을_보며_잠드는.jpg)

(...여, 여기가 어디요?)


이렇게 매력 있는 화가에 대해 확실한 문헌이 없다는 것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의 신윤복은 매우 허구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신윤복을 여성으로 표현해놓은 것이 대표적인 허구인데요, 이는 확실히 잘못된 것입니다.

신윤복은 여자가 아니며 확실한 남자입니다!!

(남자라고!)


앞서 언급한 오세창의 글에서도 신윤복은 신한평의 아들이라고 나와 있으며, 신윤복의 자 입부(笠父)는 삿갓을 쓴 남자를 의미합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을 떠나 신윤복의 그림을 보면 얼마나 신윤복이 남성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혹자들은 신윤복의 얇은 필선과 세밀한 옷 주름 묘사를 두고 여성적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러한 그림의 외적인 표현이 신윤복을 여자로 만들어주진 않습니다.


신윤복의 작품들을 내적인 소재 면으로 살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이 여성을 희롱하는 남성의 모습입니다. 게다가 ‘단오풍정’에서와 같이 여성을 훔쳐보는 관음적인 시선은 엉큼한 마음을 가진, 소위 말해서 속(俗)된 남자가 아닌 이상 화폭에 담아내기 힘든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윤복의 그림은 속된 그림, 즉 속화가 되는 것이지요. 신윤복은 이러한 속화를 즐겨 그려 도화서(圖畵署)에서 쫓겨난 것으로 전해지며, 그의 부친과 조부는 화원이었으나 그가 화원이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단오풍정

그렇다고 하여 신윤복이 속화만 그렸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신윤복은 속화뿐 아니라 산수화와 영모화(동물그림) 등에도 매우 뛰어났거든요.

비록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신윤복의 산수화는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매우 아름답게 그려진 작품들이 있습니다. 소설에서 나온 것처럼 ‘그리워하는 것’이 ‘그림’이라고 한다면 신윤복이 그리워한 것은 비단 여성들과의 주색잡기만은 아닌 것이지요.

송정관폭도

동양화 화론에는 ‘그 사람에 그 그림이다(其人其畵)’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림은 그 사람을 대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신윤복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가 매우 탐미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윤복의 작품에 쓰인 색, 구도, 필선, 인물들의 자세 등을 보면 그린 사람이 과연 남자가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쁘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림을 통해 그가 얼마나 자유분방한 한량이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 소재들을 살펴보면 산에서 기녀들과 노는 젊은 양반, 단옷날 그네 뛰고 목욕하는 여인들을 살펴보는 동자승들, 달빛이 비추는 야심한 밤 담벼락 밑에서 밀회를 나누는 연인, 검무를 추는 기생의 모습 등 사람 좋아하고, 엿보기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그의 모습이 그림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듯합니다.


특히 신윤복의 속화에는 남녀간의 애정관계가 소재로 두루 다뤄지고 있는데, 남녀관계에 있어선 양반, 기생, 중인, 노비, 스님 등 계급 간의 격차는 물론이고 노소의 구분마저도 두지 않고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유청강

신윤복은 한량에 탐미적이며 남녀간의 애정관계를 무척 좋아하던 로맨티시스트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조선시대의 강한 유교 사상과 신분 계급도 그에겐 하나의 놀잇감에 불과했을까요?

작품을 통해 본 신윤복은 그야말로 조선시대의 모던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傳 신윤복 / 건곤일회도첩 中
傳 신윤복 / 사시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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