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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언 Jul 15. 2020

그녀는 내일 죽는다.

나는 내일 죽는다.    


그러나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보며 슬퍼하고 한숨짓는다.    


내 죄는 ‘존속 살인’이다. 나는 나의 아버지를 죽였다.    


사람들은 내 외모만 보고 나 같은 사람은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단정 짓는다.     


웃음이 난다. 내 외모만 보고 그런 판단을 하다니. 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죽일 수 있다.    


아버지는… 아니, 그 인간은 짐승 이하의 악마다.    


폭행, 납치, 강간, 살인…    


어머니는 어째서 이런 남자와 결혼을 하시고, 또 나를 낳으셨을까?    


어머니는 내가 7살 때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기숙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시간은 너무나 행복했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의 행복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지옥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때렸다.    


나를 보면 어머니가 생각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버지에게 맞은 날은 내 방에 들어와 창밖을 보곤 했다.    


하지만 차라리 맞은 날은 좋았다. 그걸로 아버지의 화가 풀리면 적어도 다음 날까지는 조용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밤, 내 방에 아버지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지옥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    


그때 마음먹었던 것 같았다.    


벌을 받게 된다면 달게 받겠다고.    


다만…    


반드시 아버지를 죽인 후에.    


* * *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도끼로 찍어 죽인 후, 베란다에서 밀어 떨어트렸다.    


그리고 아버지가 베란다에서 발을 헛디뎌 실족사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다.     


떨어진 정도로는 머리에 도끼 자국이 나진 않을 테니까.    


나는 법정에서도 당당했다.    


아버지의 학대에 항거한 나의 행위는 평가절하되어선 안 된다.    


나의 저항은 정당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나에게는 사형이 선고됐다.    


나는 내일 죽는다.    


나는 겁내지 않을 것이다.     


나를 기다리는 단두대에 거리낌 없이 내 목을 맡길 것이다.    


나의 이름은 베아트리체 첸치.     


자신의 친딸을 강간한 자의 여식이며, 폭행과 살인을 일삼은 아버지를 죽인 딸이다.    


Elisabetta Sirani <Retrato de Beatrice Cen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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