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함에 대하여
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 김지혜 지음
격렬함에 대하여
소리 하나가 나의 뒤꼍을 슬그머니 지나간다 발길 뜸한 영선암 처마 끝에나 깃들이는 풍경(風磬) 소리가 마음의 목젖에 고요히 내려앉는다 깃을 턴다 뒤돌아보니 블라인드 몇 가닥 열린 문틈으로 빠져나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나부끼는 바람의 속살을 파고들고 있다 할퀴어대는 손톱질이 격렬하다 끌어안는 손아귀의 힘줄이 완강하다 보지 않고 들을 때는 한없이 부드러웠던 가락, 영혼의 목젖을 부드럽게 이완시키던 소리의 배후가 서울 한복판 빌딩 9층 창턱에 찢겨 너덜거리고 있다
저 소리의 정면을 맞바라보는 순간, 이로써 참혹한 관계 하나가 시작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