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 김지혜 지음
시간이 모아두었던 몇 장의 그림을
너에게 걸어두기로 한다
굳게 다문 입가
뚫어져라 응시하는 눈
침묵과 엄숙함의 희뿌연 자리마다
겹겹이 쌓여 있는 먼지를 털어낸다
떨어져나간 귀퉁이, 패인 흉터를 어루만진다
한때 나일론 붓으로 성급하게 그어버린 벽
벽을 만들어가던 붉은 벽돌들의 만남
그 틈새로 섞여 들어가 아교처럼 손깍지 끼우던
햇빛 같은 웃음소리, 그 찰나들의 발랄함
그러나 멈춰버린 벽, 조금씩 마모되는
지루하고 끔찍한 벽돌의 띠
그 모두를 너에게, 너의
통찰과도 같은 화첩에 걸어두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시(詩)여, 붓을 다오
붉고 푸른 색색의 물감을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