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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담유 Aug 08. 2022

시간의 화첩

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 김지혜 지음

시간의 화첩



시간이 모아두었던 몇 장의 그림을

너에게 걸어두기로 한다

굳게 다문 입가

뚫어져라 응시하는 눈

침묵과 엄숙함의 희뿌연 자리마다

겹겹이 쌓여 있는 먼지를 털어낸다

떨어져나간 귀퉁이, 패인 흉터를 어루만진다

한때 나일론 붓으로 성급하게 그어버린 벽

벽을 만들어가던 붉은 벽돌들의 만남

그 틈새로 섞여 들어가 아교처럼 손깍지 끼우던

햇빛 같은 웃음소리, 그 찰나들의 발랄함

그러나 멈춰버린 벽, 조금씩 마모되는

지루하고 끔찍한 벽돌의 띠

그 모두를 너에게, 너의

통찰과도 같은 화첩에 걸어두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시(詩)여, 붓을 다오

붉고 푸른 색색의 물감을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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