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 김지혜 지음
너의 뚜껑을 열었지 한 겹 두 겹 세 겹…… 겹겹이 깍지 낀 채 굳어버린 너의 과거를 열었지 증오보다 더한 완력으로 빗장 지른 너의 폐허, 놀랍게도 거기 텅 빈 흉곽 안에 빛다발 수천 근 우글거리고 있었네 무언가 할 말 간절하다는 듯 필사적으로 꿈틀거리는 순백의 혼(魂), 한번 놓치면 다신 붙잡지 못할 몸뚱어리 미련 없이 놓아버리고 허공 한 줌 억세게 움켜쥐고 있었네 그 뼈 없는 손목, 처절했네 그러니 그 흉곽은 유(有)였는가 무(無)였는가 나는 알 수 없어 움켜쥘 수 없었네 그러나 접근금지 팻말 꽂힌 너의 흉곽 열어젖힌 순간 눈부신 허공 떠받치고 있는 한 덩이 어둠의 심연을 보았네 그 어둠 벌컥벌컥 들이켜고 너의 배경으로 곧장 가라앉고 싶었네 네 손목의 텅 빈 완력에 송두리째 사로잡히고 싶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