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태우는 작은 순간들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마음으로 감각하는가? 가능한 한 전력을 다해 공감적으로 도약하는가? 주변 세상을 목격하는가? 우리를 위해 포석을 깔아 둔 이들의 어깨를 등반하고 있는가? 날마다 우리 자아의 모든 조각을 사용하고 우리의 삶을 소모하고 소진하면서 매일을 살아내고 있는가?                                                        <계속 쓰기 : 나의 단어로> 대니 샤피로

삶을 태우는 작은 순간들

둘째의 어린이집 학예회날. 발표회 시간은 저녁이라 오전에 등원하지 않고 나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평소와 달랐다. 내 옆에 붙어 종알종알거리며 발표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엄마는 언제쯤 오는지, 어디에 앉아 있을 건지, 자신의 차례는 아는지 쉬지 않고 질문을 한다. 소파로 쪼르르 달려가 안무 연습도 한다.

“많이 떨려?”

“아니?”

떨리지 않는데, 온 신경은 나중에 있을 그 무대로 가 있다는 걸 오전 내도록 티를 내는 둘째였다. “엄마! 엄마가 내 이름 크게 부르면 내가 엄마를 찾을게. 엄마! 이거 들고 흔들면서 내 이름 불러!” 작년에 만들어놓은 둘째 이름이 쓰인 피켓을 어디선가 찾아와 나에게 건네며 말한다. “응! 엄마가 엄청 크게 부를 테니까 바로 찾아야 해! 그러면 웃으면서 할 수 있을 거야!”

수업을 마치고 부랴부랴 공연장으로 갔다. 드디어 둘째 아이의 공연 순서가 왔고, 반짝거리고 알록달록한 의상을 입은 여섯 살 꼬맹이들이 일렬로 줄지어 무대로 올라섰다. 낯선 조명 아래에서 둘째의 얼굴이 심각해 보인다. 조명이 눈부셔서 그런가 살짝 창백해 보이기까지 했다. 두리번두리번거리는 시선, 그 찰나에 불안한 눈빛이 객석 어디에도 앉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약간 떨리는 모습도 포착이 된다.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엄마, 어디에 있어?'

‘나는 지금 마음으로 아이를 감각하고 있는가?’

떨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불안 대신 묘한 경외감이 들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 기대, 잘 못할 거라는 두려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그 자리에서 율동을 시작하기 위해 허리춤에 손을 올린다. 그 두려움과 떨림, 나는 그 순간을 목격하고 있었다.

아이가 들을 수 있게 큰 목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두 팔을 높이 들어 흔든다. 그 부산한 움직임은 여전히 객석 위를 더듬거리는 아이의 시선을 잡아두는 데 성공한다. 환하디 환한 미소! ‘우리 엄마’라는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듯했다. 아이는 드디어 미소를 머금은 채 앞에 마주한 선생님의 율동과 나의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보며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들을 꺼내놓았다.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고, 나는 평생에 한번 남을 아이의 순간을 담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행사가 끝나고 무대를 내려온 아이는 내게 달려와 “엄마, 나 잘했어?”하고 물었다. 나는 환희 웃으며 말했다. “최고였어!” 하지만 아이의 질문에 담긴 진짜 의미를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나의 도전을 엄마가 잘 봐줬어?’

그날 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매일 내 삶을 이렇게 태우고 있는가? 아이처럼 두려움을 마주하고 실수할까 망설이면서도 한 발을 내디디고 있는가? 안전한 자리에서 모든 걸 계획하고 계산만 하고 있는가? 무대 위에서의 작은 떨림처럼 무수히 많은 작은 순간들이 모여 빛나는 삶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그날 아이는 내게 가르쳐줬다. 실제로 그날, 나는 어설프지만 너무나도 귀엽고 작은 그 빛나는 존재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삶은 매일 나를 소모하게 만들지만, 그 소모가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태우고 빛내기 위한 과정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나는 아이의 도전을 목격하며, 내 삶의 작은 순간들을 더 소중히 태우기로 결심했다.

이제 나에게 진짜 질문을 해본다.

‘나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무대에서 무엇을 어떻게 '감각'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