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한 장면
방문을 여는 순간, 퀴퀴한 공기가 폐 속으로 훅 밀려들었다. 담배 연기가 벽지에 스며들어, 색도 냄새도 떼어낼 수 없는 흔적이 되어 버렸다. 오래도록 쌓인 냄새는 웬만해선 빠지지 않는 법이다. 당신이 피우던 담배의 니코틴이 찌든 외투가 옷걸이에 걸려있다. 가까이 가지 않았지만 어쩐지 당신이 거기에 있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도 소용이 없다. 방은 마치 땀에 절은 베개처럼, 당신의 흔적을 품고 있었다.
방 한 구석, 낮은 목재 테이블 위에 각종 산업기사 자격증 수험서가 쌓여 있다. 그 위로 반듯하게 놓인 제도 샤프와 한쪽 모서리가 닳아버린 지우개, 15센티미터 자, 작은 트레이 위에 올려진 큼직하고 무거운 안경, 그 옆에 뚜껑 덮인 인주. 메모지들까지. 정리 정돈된 아빠의 공부책상은 그 당시 어지럽고 불안한 내 마음상태와 완벽히 대조되는 공간이었다.
책상을 닦을 천을 바닥에 놓고, 반들반들해진 방석 위에 앉았다. 책상 위를 훑어보다가 이것저것 손으로 만져본다. 가장 위에 놓여있는 책을 들어 펼친다. 책갈피처럼 꽂혀 있는 명함이 눈에 띈다. 임시로 꽂아둔 것이겠지.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자로 그은 듯 반듯한 밑줄. 여백에 깨끗이 정리된 필기, 풀기만 하고 채점해 놓지 않은 문제들.
피식, 쓴웃음이 났다.
책을 덮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손끝에 남은 책의 감촉이 묘하게 낯설다. 책상 위를 다시 한번 훑어보다가, 방석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을 집어 들고 책상을 가볍게 닦았다. 먼지 한 톨 없이 정리된 공간에 내 손길이 닿았다는 사실이 어쩐지 어색하다.
방을 나서려다 한 번 더 돌아보았다. 낮은 목재 테이블, 제도 샤프, 닮은 지우개, 작은 트레이 위의 안경, 여전히 반듯한 그 자리 그대로. 그리고 그 뒤로 겹쳐 보이는 아빠의 뒷모습.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족들에게 뒤틀린 권위를 강요했던 사람. 그것이 권위인지 폭력인지, 사랑인지 당신만 모르는 사람. 아빠가 싫었다. 그런 당신의 고개 숙인 모습, 처자식을 위해 머리를 숙이고 자로 밑줄 쫙쫙 그어가며 공부했던 그 초라하고 낯선 뒷모습은 왜인지 모르게 싫지만은 않았던 나.
좋았던 걸까.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걸까.
그 방, 그 테이블 앞, 그리고 그 앞에 앉아있는 아빠의 뒷모습은 내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벽지 속 깊이 스며든 담배 연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