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이 시작된 건 새벽이었다. 처음엔 그냥 배가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다가 서서히 고통이 밀려왔다. 진통은 바다와 같았다.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와 몸을 뒤흔들고, 다시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책으로만 배운 ‘출산과 분만’에 대한 얄팍한 지식은 상상도 못 했던 진통의 위력에 산산이 부서졌다. 처음에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규칙적으로 찾아오는 통증 사이사이, 짧지만 숨을 돌리 수 있는 틈이 있었다. 하지만 파도는 점점 거칠어졌다. 견딜만한 고통이 이윽고 몸을 부수듯 몰아쳤다.
“괜찮을 거야.”
옆에서 손만 잡고 어쩔 줄 모르는 남편의 위로의 말이 어쩐지 얄미웠지만, 그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이 온몸을 틀며 대답했다. 아니, 고함이었던가. 욕이었던가.
“허리가 두 동강 날 것 같아. 안.괜.찮.아!!!”
온몸이 뜨거웠다. 땀인지 눈물인지, 고통으로 일그러져 더 두각을 나타낸 광대뼈를 타고 흘러내렸다. 손끝이 저릿했고 허리는 부서질 듯이 끊어질 것 같았다. ‘이런 건 책 어디에도 없었다고!!’ 무통 주사를 놓았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무통 천국으로 가는 탑승시간을 놓쳐버린 것이었다. 간호사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더 힘주세요.”
‘조금만 더’라는 말이 이렇게나 잔인했던가. 태어나서 이제껏 ‘이렇게나’ 힘을 줄 때가 있었던가.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어디서 글로 배운 ‘라마즈호흡’인지 뭔지도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숨이 점점 흐트러졌다. 손이 공중을 헤맸다. 뭔가를 붙잡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의료진의 분주한 움직임이 오갔다. 짧고 단호한 지시들. 그리고 쉴 새 없이 밀려오는 고통. 진통이 절정에 이르렀고 나는 거의 모든 감각이 마비된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왔다. 몸이 두 쪽으로 찢어질 것 같은 감각. 안에서부터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듯한 압박. 나는 비명을 삼키고 온 힘을 다해 밀어냈다.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온몸에 힘이 스르륵 빠지고 바로 전에까지 나를 짓누르던 모든 고통이 한순간에 멀어져 갔다. “아이 아버지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아마도 탯줄을 자르려고겠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간호사가 내 품에 아이를 안겨주었다.
퉁퉁 부은 얼굴, 여기저기 빨갛고 푸르스름하기도 한 작은 생명, 너무도 작고 너무도 여린 온기.
“안녕, 우주야.”
조그마한 손이 꿈틀거렸다. 내 몸의 일부였던 온기가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뭉클하게 무너져 내리는 내 심장 소리를 들었는지 작은 입술이 달싹거렸다.
처음으로, 나는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