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하나를 두고, 작은 소란이 인다. 전운은 제법 고요하게 시작된다. 기선제압을 향한 눈빛, 그리고 낮은 음성.
“내가 먼저 한다고 말했어!”
“아니야! 내가 먼저 손으로 잡았잖아!”
“내놔라, 좋은 말로 할 때.”
“싫은데, 내가 먼저 잡았어.”
소파에 앉아있던 어른이, 둘 사이에 무언의 사인이 오간다. ‘지켜보자. 우리는 빠지자.’ 이건 약속도, 암묵도 아닌- 그저 부모가 되어가는 여정 중 익숙해진 동맹이다. 한 명은 그들이 시야에 들어올 만큼만 고개를 돌려 한 곳을 응시하고, 다른 한 명은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둔 채 상황을 살핀다. 일단 관망.
변방 꼬마들의 말이 탁구공처럼 오간다. 화려한 눈싸움 기술과 유치한 언변의 랠리가 제법 오래 이어진다. 프라이팬이 서서히 달구어지듯, 두 녀석의 표정과 억양도 점점 달아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첫째가 자신이 가진 논리를 총동원해 (나는 그것을 논리라 쓰고 ‘무논리’ 혹은 ‘땡깡’ 혹은 ‘억지’라고 읽겠다) 강력한 스매싱 한 방을 날린다. 목소리가 거실벽을 때리고 나서야 둘째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내가 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야 해? 울면 다야? 니가 운다고 엄마 아빠는 안 도와줘. 형아가 말했지? 좋은 말로 할 때 내놓으라고! 어제는 형아가 좋게 좋게 양보했잖아! 너는 왜 너만 생각하는데!”
“으앙! 내 마음인데! 으앙!”
“니 마음만 있냐? 내 마음도 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저 레퍼토리는 어쩜 토씨하나 안 바뀌고 세월을 초월하여 튀어나오는지. 유전자에 박혀서 물림이 되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소파 위의 두 어른이들이 눈을 마주친다. 한 명은 폰 뒤에 급히 얼굴을 숨겨 입 틀어막고 웃기 바쁘고, 또 한 명은 고개를 휙 돌려 터지는 웃음을 막으려 앞니로 입술을 사정없이 깨문다. 그렇게 시간은 잠시 정지된다. 울음소리와 씩씩거리는 소리만 귓등을 때린다. 동맹국들의 시선이 포개어졌다가, 변방의 소란에 휘말리기 싫은 듯 시선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진다.
평소 형을 만만하게 보던 둘째가 그날은 제대로 호랑이 코털을 잡아당긴 하룻강아지가 되어버렸다. 첫째의 분노가 휩쓸고 간 자리엔, 조용한 눈치 바람만 분다. 둘째의 울음이 잦아들자 첫째도 조금은 부드러워진 말투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침내, 고집부리고 버티던 손이 움직인다. 눈물 묻은 장난감은 조용히 형의 손에 건네지고 소란은 마무리된다.
“니 마음만 있냐, 내 마음도 있다.”
언제나 들어도 명대사다. 세대를 초월한 육성 복붙. 혹여나 나의 동맹국과 소소한 소란이 일어난다면 꼭 써먹어봐야겠다. 단, 타이밍과 억양을 잘못 잡으면 외교 단절 3일 차 돌입할 수도 있으니 주의. 눈치와 타이밍은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