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자리에서 어색함을 깨고자 옆자리 미혼 남자 선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질문받은 이에게로 향했다. 그는 어깨를 움찔하더니 생각에 잠겼다.
잘생긴 외모, 서글서글한 성격, 만능 스포츠맨인 이 매력적인 총각은 어떤 여자를 이상형으로 꼽을까? 예쁜 여자? 섹시한 여자? 착한 여자? 똑똑한 여자? 하지만 그가 선뜻 답 못하고 고민하는 낌새를 보이자 ‘아이코, 공연한 질문을 했구나.’ 하고 후회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상형을 ‘이성’으로 특정 지어 묻는 것도 삼가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만 잠시 뒤, 그가 특유의 선한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낮은 여자요.”
그의 답에 다들 살짝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가 덧붙였다.
“저는 보청기를 착용하더라도 고음 변별이 힘들거든요. 그래서 목소리 톤이 높은 분과 대화할 때는 신경이 곤두서고 불안해져요. 반대로 중저음 목소리를 지닌 여자분과 대화를 나누면 마음이 편해지고 호감이 가더라고요. 따라서 저랑 ‘주파수’가 잘 맞는 여자가 이상형이에요.”
그의 말을 들은 이들은 “그럴 수 있겠네요.”를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총각 선생은 보청기를 착용하면 전화 통화도 가능할 정도로 듣고 말하는 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청각장애로 인해 남모를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모두들 생각에 잠겼는지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잠시 뒤 누군가가 정적을 깨며 입을 열었다.
“사람 일은 몰라요. 사랑에 빠지면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우선순위가 바뀌더라고요. 선생님도 주파수라는 특정 조건으로 제한을 두지 말고 주위를 두루 살피시면 어떨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파수’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상대방이 내보내는 주파수를 인식할 수 있는지는 ‘소리가 들리고 안 들리는’ 청각의 문제일 뿐 아니라, ‘소통’이라는 정서적, 심리적 영역에 해당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날 밤, 잠든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연애 시절부터 우리가 주로 다퉜던 이유가 바로 이 주파수의 문제 때문이었다. 둘 다 청력에 문제가 없지만 도통 주파수가 맞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로 표현했으나, 그 메시지는 상대방 머리 또는 가슴에 도달하지 못한 채 공기 중에 흩어지곤 했다. 나는 원래, 말이 잘 통하고 나를 공감해 주는 즉, 주파수가 잘 맞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에 눈이 멀자 그 누군가의 말처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주파수는 뒷순위로 밀려났고, 그와 결혼까지 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를 결혼에 이르도록 하게 했던 '주파수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를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그가 지닌 선한 성품, 곧은 가치관, 삶에 대한 성실한 태도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우선순위로 꼽은 그의 장점이 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과 갈등을 극복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말이 안 통하거나 소통이 부족하더라도 그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인내를 가능케 해 주었으니, 이게 바로 사랑인가? 이전에는 한 쌍의 앵무새처럼 다정하게 속삭이는 커플만 보면 몹시 부러웠는데, 나란히 선 소나무처럼 묵묵히 비바람을 함께 맞는 우리 부부의 사랑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갑자기 이런 내 이야기를 총각 선생에게 들려주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했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생각나며, 조용히 밥이나 한 끼 사 줘야지 하고 맘을 바꿔 먹었다. 그가 주파수 잘 맞는 여자를 만나기를, 혹시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것을 극복할 만한 장점을 지닌 여자를 만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