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만 명으로 불어난 거대한 군대, 잘 조직화되다
최근 읽은 책 "이상한 성공"에서 인상적인 부분 위주로 소개해 봅니다. 앞의 글을 못 읽은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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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R의 공포가 온다 -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 이야기")에서 50년대 이승만 정부 때 이미 강력한 경제성장. 특히 제조업 중심의 성장이 시작되었다고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이를 잘 보여주죠. 다른 어떤 나라에 비해서도 강력한 경공업 및 중화학공업의 성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태에서의 회복이니 '숫자' 그 자체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봅니다. 그럼에도, 폐허에서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련운데.. 이를 잘 해냈다는 것은 분명히 인정해야 할 부분이라 봅니다.
출처: "이상한 성공",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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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부 당시 강력한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또 다른 원인은 군사력 증강이었습니다. 언제 남침할 지 모르는 적대적 세력이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군대 규모를 키우지 않을 수 없었죠(130쪽).
그렇다고 모든 국가가 자원을 동원하고 산업화를 이끌 수 있는것은 아닙니다. 자원을 동원하고 경제발전을 추동할 수 있는 국가,즉 근대국가가 만들어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에서 그런 근대국가가 만들어진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한민족의 최대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근대국가의 기구들이 위로부터 제도화되고 급격히 확대되었으니까요. (중략) 사실 전쟁이 국가의 역랑을 강화했던 역사는 한국만의 고유한 경험은 아닙니다. 북서유럽의 복지국가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그렇게 빠르게성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한국전쟁이 남긴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그것은 한국전쟁으로 군대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선진화된 국가기구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전쟁 전에는 10만 명에 불과했던 군인이 1953년 7월 휴전직후에는 무려 70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부터1961년까지 미국 연수를 다녀온 한국군 장교만 6천여 명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정당성 여부를 떠나) 왜 1960년대 이후 한25국 사회에서 군인이 30년 넘게 국가 운영을 주도했는지 설명하는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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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장면 내각이 잘 대응했다면 '5.16' 쿠데타가 성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로도 계속 쿠데타 시도가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