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성장 후분배에 대한 암묵적 합의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반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임금도 오르고 토지가격도 상승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노동 및 토지 생산성이 향상되면 더 많은 돈을 주고서라도 근로자를 고용하고 토지를 매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60~1970년대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최근 읽은 흥미로운 책 "이상한 성공"을 통해 설명하겠습니다.
혹시 앞의 글을 못 읽은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
60~70년대 한국 근로자들이 노동생산성 수준에 턱 없이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177쪽).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산업화가 본격화된 1961년부터 1987년까지 26년간을 집권했던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단체행동을 하는 것을용납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해를 억눌렀던 까닭은 권위주의 정권의 물리적 탄압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노동자들의 동의가 없었다면, 권위주의 개발국가가 총칼로 위협한다고 해도 그 많은 노동자를 경제개발에 헌신하도록 강제할 수는없었을 테니까요.
결국 당시에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는 게 윤홍식 교수의 주장입니다(177~178쪽).
한국을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에서 근대적 산업국가로 만드는일은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이 품고 있었던 민족적 과제이자 소망이었습니다.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장준하를 비롯해 개혁적 지식인들조차 쿠데타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며 찬양했던 이유였습니다. 아마 노동자들도 '잘살아보세'라는 조국 근대화의일념으로 자기 밥그릇의 밥을 덜어 권위주의 개발국가가 추진하는경제개발을 위해 양보했을 것입니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일단 자원을 몰아주고, 나중에 그 기업이 잘되면 노동자가 부를 함께 나누는 세상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먼저 성장을 하고 나중에 분배하자는 것인데(선성장 후분배), 강원대 경제학과의 이병천 명예교수도 “노동자들이 이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권위주의 개발국가가 고도성장을 이끌어갈 재벌 대기업에 자원을 몰아주기 위해 강압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통제했지만, 노동자가 크게 저항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이유는 바로 경제가 성장하면 나중에 노동의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
이 기대가 무너질 때에는 반대 현상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게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것이 1988~1989년의 대규모 파업사태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