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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흐르는 거리, 빛이 머무는 시장

핑크스트리트와 타임아웃마켓, 리스본의 감각을 걷다

by 트릴로그 trilogue


분홍빛 변신, 핑크 스트리트


카이스 두 소드레 지구 한복판에 자리한 핑크 스트리트는 리스본 도시 재생의 가장 극적인 사례다. 한때 항구 노동자와 선원들이 모여들던 홍등가였던 이곳은 이제 강렬한 분홍색 포장도로로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다.


내가 핑크 스트리트를 찾은 시간은 오후 네 시경이었다. 아직 높이 떠 있는 태양 아래, 분홍빛 바닥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머리 위로 이어진 형형색색의 우산 천장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거리 전체를 마치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처럼 만들어냈다.


벽면을 채운 그라피티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무심하게 그린 듯한 붓질 하나에도 에너지가 서려 있고, 낡은 건물의 벗겨진 페인트와 삐걱거리는 창틀조차 이곳에서는 하나의 미학이 되어 보였다. 빈티지 숍과 독특한 콘셉트의 카페들이 작은 공간을 알차게 꾸며놓은 모습도 창 너머로 지나는 발길을 자연스럽게 붙잡았다.


핑크 스트리트 초입의 전경


이미 거리는 활기로 가득했다. 무리 지어 걷는 젊은 여행자들, 카메라 셔터를 바쁘게 눌러대는 사람들, 벌써부터 음료를 앞에 두고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는 현지인들까지. 좁은 골목 양쪽으로 늘어선 펍과 바들은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문을 활짝 열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핑크 스트리트 중심 거리의 다채롭고 복잡한 전경


이곳은 단순히 '사진 찍고 지나가는' 포토존이 아니었다. 오후의 따뜻한 햇살 아래서 잠시 머물며 거리의 독특한 분위기에 흠뻑 취해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공간이었다. 리스본이 과거를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색을 덧입히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만들어낸 특별한 장소였다.




미식의 성지, 타임 아웃 마켓


핑크 스트리트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타임 아웃 마켓에 도착했을 때, 입구부터 쏟아져 나오는 인파에 놀랐다. 리베이라 시장 안에 자리한 이곳은 문을 여는 순간부터 압도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활기찬 에너지와 코를 자극하는 온갖 음식 냄새가 마치 파도처럼 밀려왔다.


40개 이상의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입점한 2층 규모 대형 푸드코트로, 각기 다른 음식과 와인, 디저트가 조화를 이루며 다채로운 시각적 자극을 주었다.


내부 인테리어와 조명,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은 언제나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며, 산책하며 구경만 해도 충분히 즐거운 시장의 느낌이 살아 있었다.


타임아웃 마켓의 안팎 전경


하지만 우리에겐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이미 저녁 식사 예약이 있어 이곳에서 직접 음식을 맛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시장 안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리스본 최고라는 셰프들의 부스마다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다음에는 꼭 여기서 식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타임아웃마켓의 내부


신선한 해산물이 풍성하게 진열된 부스들을 지나며 군침이 돌았고, 포르투갈 전통 요리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에 발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알록달록한 디저트 코너는 보는 것만으로도 달콤함이 전해졌다. 비록 맛볼 수는 없었지만, 눈으로 즐기는 미식의 향연만으로도 이곳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미식의 향연


중앙의 거대한 공동 테이블 주변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어깨를 맞대고 앉아 식사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주문 소리, 접시 부딪치는 소리, 여러 언어로 뒤섞인 대화 소리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처럼 들렸다.


중앙 테이블 모습


한쪽 코너에서는 현지 식재료와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포르투갈 전통 과자 몇 개를 사서 나왔지만, 다음 리스본 여행 때는 반드시 배를 비우고 와서 이곳의 진짜 맛을 경험해 보리라 다짐했다.




색채와 미식의 조화


핑크 스트리트의 독특한 색감과 타임 아웃 마켓의 풍성한 활기는 리스본만의 매력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과거의 상처를 새로운 색으로 덮어낸 거리와 다양한 맛과 문화가 어우러진 시장—이 두 공간은 변화하는 리스본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있었다.


단순히 보고 지나치는 관광지가 아닌, 머물고 경험하고 싶은 살아있는 공간. 이것이 바로 오늘날 리스본이 여행자들에게 선사하는 특별한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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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