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hongeun Dec 21. 2020

결혼 10년, 여전히 우리

좋은배우자와의 결혼생활은 결코 시간에 지지 않는다

나는 스물여덟에 결혼했다. 20대에 내가 했던 선택들은 하나같이 직관적이고, 설익은 데다 대책 없는 편이었는데 결혼만은 그런 수식어를 비껴갈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망설임 없이 유부녀가 되었다. 같이 결혼식장에 들어갔던 남자는 순수함과 진중함 오가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내 선택에 확신을 더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남자도 만화책방에 가는 것이 삶의 낙이며 소시지 반찬을 좋아하는 겨우 서른이었다. (저 두 가지 사실은 마흔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다)


그때 우리는 신혼집 전세금 일억 오천을 손에 들고 <와! 나 이렇게 큰돈 진짜 처음 만져봐. 누가 가져갈까 무서워> <나도 나도>라고 부동산 앞에서 희희 거리며 어수룩함을 티 내고 다녔다.  재테크라곤 몰랐고, 부모가 되는 것의 진짜 의미 같은 것엔 관심도 없었다. 사랑하니까 같이 사는 게 당연했을 뿐. 곧 있을 신혼여행이 기대되고 소꿉놀이 같은 신혼생활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났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이 벌써 10년이다. 그 사이 우리는 부부에 이어 부모도 되었다. 올해는 학부형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학부형이라니, 학부형이라니!! 모든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남편과 다르게 나는 이 단어에 알레르기가 올뻔했다. 내가 생각했던 학부형의 모습과 내가 조금도 일치하는 부분이 없어서였다. 아이를 슬기롭게 기르는 희생적인 어머니의 모습, 내 안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스물여덟의 나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서른일곱의 내가 되었다. 당연히 어른이 되는 줄 알았던 서른에도, 모든 것을 초월한 희생적인 사랑을 지니게 된다는 엄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직관적이며 대책 없이 해맑고 때론 힘들다고 엉엉 울어버리는 나인 것이다.

남편은 대책 없이 울진 않으므로 나보단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그 사람이라고 결혼이나 육아를 통해 대단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 우리는 진중하고 멋진 어른이 되는 것에 실패했다. 그러나 애초에 우리가 그런 삶을 원했는지, 또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최선을 다해 살았다. 재테크를 모르던 시절엔 무식하게 절약해서 1억을 모았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모를 땐 엉엉 울기도 했지만 그때에도 아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아직도 금요일 밤 새벽 두 시까지 맥주에 컵라면을 먹으며, 일주일에 하루인 이 시간이 너무 좋아!! 를 외치는 우리가 소중하다. 서로를 여전히 가장 첫 번째의 자리에 두고 그때 그 마음으로 살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살아 할 이야기가 남아있냐는 물음에도, 아이를 낳으면 소원한 사이가 될 거라는 편견에도 우리는 분명히 아니라는 대답이 되어줄 수 있다. 남편과 내가 대단히 사랑해서 혹은 우리가 최수종 하희라, 션 정혜영같이  본받을 만한 점이 많은 부부여서는 절대 아니다. 내 주변의 많은 부부들이, 심지어 더 많은 결혼기간을 자랑하는 부모님들조차도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은 채 여전히 서로를 위한다. 한마디로 서로에게 반했던 그 모습 그대로 재밌게 잘 사는 부부들이 많다는 얘기다.

롱런하는 부부의 비결, 내가 이런 대단한 걸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단언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무한한 것 또한 없다. 나 조차도 내일 우리의 견고한 사랑이나 행복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결혼을 앞두거나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사회적으로 굳어버린 결혼의 부정인 시선에 겁먹지 않기를 바란다. 좋은 배우자와의 결혼생활은 결코 시간에 지지 않는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