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슬픔 끝에, 무인가게 사장이 될 수 있었다
로켓배송보다 빠르게 우리 집 소식을 유치원으로 나르는 아들에게 지난봄 꼭 비밀을 지켜달라고 당부한 일이 있다. 웃으며 그렇지만 은밀하게 아이의 귀에 속삭였던 말, “준아, 엄마 대머리 된 거 유치원에 비밀이야.” 아이가 태어나 겪은 일 중에 손에 꼽히게 놀라웠을 이 사건이 유치원까지 전해지지 않았는지, 여전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대머리가 된 건, 지난 3월이었다. 경증에 오래 머물러있던 자가면역질환이 심해져 면역억제제를 복용했는데 이게 독이 되어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됐다. 면역억제제 부작용으로 백혈구 수치가 떨어졌고 감염 우려로 바로 1인실에 격리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주일이면 제자리를 찾을 줄 알았던 몸은 쉬이 좋아지지 않았다. 입원 생활은 길어졌고, 아픈 사람의 시간이 다 그렇듯 힘들고 괴로웠고 지리했다. 그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처음 받아 본 수혈도, 고열에 시달리던 밤도 아니었다. 이목구비보다 더 자신 있던 새까만 머리칼이 사라지고, 매일 어제보다 더 많이 드러난 두피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암도, 죽을병도 아니라는데 눈만 뜨면 무섭게 달라지던 몸의 변화를 마주하는 일이 두려웠다. 그렇지만 ’아직 젊으니까 곧 끝나겠지,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아파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버티며 3주를 보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바깥세상은 배신감이 들만큼 아무렇지 않게 잘 돌아갔다. 나만 병원 1인실에서 한 발자국도 걸어 나가지 못한 채 외로움과 두려움, 서운함 같은 감정을 마주하며 고립되어 갔다. 할 수 있는 건 글쓰기뿐이었다. 살려고 써낸 글은 거칠었고 날 것이었고 절박했다. 메모장을 숱하게 채우는 짧은 문장들과 어두운 소설 두 편이 내 마음을 대변했다.
담당교수님은 다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이미 머리카락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 퇴원하는 날 삭발을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거울로 달라진 나를 마주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지만 남편이 머리를 미는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줘서 힘들었던 기억을 고마운 마음으로 덧칠할 수 있었다.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감추고 사람들과 섞이는 일은 두려웠고, 아이의 등하원이 하기 싫은 숙제처럼 느껴졌지만 가족들이 작정한 듯 내게 사랑을 퍼부어서 숨거나 도망칠 수도 없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건넨 ‘너는 두상이 진짜 예쁘다’ 같은 말들, 아이들과 주고받았던 사랑한다는 감정표현이 나를 견디게 했다. 만화책을 보던 일곱 살 둘째가 헐레벌덕 달려와서 “엄마, 콩 먹어!! 콩 먹으면 머리난대!”하고 외쳤을 땐 웃다가 눈에 가득 눈물이 고였다. 남편과 아이들은 행동으로 눈빛으로 내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나를 사랑했다. 전엔 모든 게 당연했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난 뒤 내게 전해지는 마음 하나하나가 고마웠고, 오늘의 행복이, 가족의 존재가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 아이들과 남편이 더없이 소중해졌다.
달라진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숨고 싶던 날들 속에서도 나는 분명히 단단해지고 있었다. 남들과 달라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몸소 느낀 후, 그동안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 밀도만을 쌓아오던 내 인생의 부피가 순식간에 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평을 넓힌 내 눈에 더한 바닥도 드높은 하늘도 보였다. 그동안 ‘나’라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지켜왔던 기준이 사라지고 내가 걸어갈 수 있는 수많은 길의 갈래를 마주했다. 오래 반대했던 남편의 투잡과 투자, 공격적인 재테크에 동의한 것도 평범한 인생 대신 다른 모양의 삶을 살아볼 용기가 나서였다.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내 이름으로 사업자를 내자고 했다. 가게 자리를 보러 다니며 매일 만보가 넘게 걸었고, 생경한 풍경과 새로운 장소들 사이를 오갔다. 세상을 향한 마음을 바꾸고 다른 선택을 하자 한 번도 내가 상상해보지 않았던 모습으로 인생이 흘러갔다. 봄과 길었던 여름을 지나는 사이 나는 아이스크림 할인점 두 곳의 사장이 되어있었다. 다시 건강해졌고, 아이들, 남편과도 더 가까워졌으며, 무엇보다 더 이상 나의 외형으로 슬프지 않게 됐다.
지난 10월엔 결혼 13주년을 기념해 가족들과 일본에 있었다. 삭발한 지 6개월이 지났고, 처음으로 가발을 벗고 유후인을 걸으며 영원한 기쁨도 슬픔도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 밤 나는 드디어 이 이야기를 글로 옮길 마음이 생겼다. 가발 속에서 새까맣게 올라오던 머리카락처럼 내 마음에도 이제 새살이 올라온 것 같았기에 꽁꽁 묻어두었던,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고 들키기 싫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색을 더한 다채로운 인생, 더 단단해진 나를 세상에 내보일 수 있게 됐다는 확신이 든 순간, 더 이상 내게 비밀은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