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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꾸녕 Aug 13. 2024

애꿎은 소설

가던 길이나 가자

 햇살이 내리쬐어서 창문을 잠깐만 바라보아도 더위가 느껴지는 하루였다.

어디선가는 천둥이 치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음흉한 울림이 들리고 이렇게 더운 여름은 처음 살아본다며 편의점 앞에 앉은 노인들이 부채질을 하며 대화했다.

길을 걷는 개들은 모두 혀가 바닥에 닿을 것만 같았고, 차 밑을 그늘 삼아 쉬는 길고양이들을 보며 쟤들이 저대로 익으면 어쩌지라는 잔인한 생각이 들 정도로 바닥 열기가 발목까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그때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오랜만에 보는 눈은 비어있는 눈이었다.

인도도 따로 없고 오고 가는 차들을 피해 재주껏 차바퀴에 발을 밟히지 않도록 다녀야 하는 그 열악한 거리.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 밀집해 쓰레기장이 따로 없어 전봇대마다 흘러 있는 고약한 김치 국물 등에 파리들이 신나게 모여들어 파티하는 거리.

밤이면 가로등이 넉넉치 않아 공기 색깔이 시커메져서 사람들이 일찌감치 집에 귀가하여 더욱더 새까만 거리가 되는 거리.

나는 그런 거리에서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어딘가 부족한 눈이었다.


걷던 방향을 돌려 그 사람 뒤를 따랐다. 

큰 티셔츠는 작은 등을 덮고도 남아 구겨진 자국들이 뜨거운 바람에 치렁치렁 흔들렸다.

'이 동네에 사는 건가.'

그 사람의 등을 바라보고 지는 해를 마주하며 서쪽으로 걷는다. 그 사람 머리에 잔뜩 달려 있는 머리카락들은 탈색에 지쳤는지 힘이 없어서 바람 방향에 따라 나폴 대며 들썩거리는 것이 무성한 갈대밭 같았다.

머리카락부터 닳아있는 신발 밑창의 방향까지 눈으로 훑으며 그 사람과의 거리가 너무 좁혀지거나 멀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가는 길 말고는 아무 관심이 없는 것 같던 그 사람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운동화 세탁소였다.

갑자기 멈춘 걸음에 눈에 띄지 않게 멈추어 시계를 보는 척하며 휴대폰을 들어 나는 무심코 전화번호를 누른다. 아무 용기가 났다. 근원이 없는 용기.

세탁소에 들어간 그 사람은 카운터에 서서 뒷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오랫동안 말을 안 했는지 가라앉은 목소리다.

"전화 안 받을 줄 알았는데."

"안 받을 이유는 없지."

"그래. 한 번 보자."

"..." 

"왜 대답을 안 해."

"그래. 근데 나 좀 멀리 있어. 서울도 아니고, 서울에 다시 돌아갈지.. 그것도 아직 몰라."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지금 서울에 있으면서. 어제도 있었고. 내일도 있을 거면서.

"멀리 있구나. 그래도 또 전화할게. 전화는 멀리 있어도 할 수 있으니까. 그때도 바로 받았으면 좋겠다."

"그래."

거짓말을 하는 그 사람 등을 바라보며 서운함이 섞인 묘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는다.


운동화 세탁소에서 그 사람이 흰색 봉지를 들고 나온다. 멀찌감치 기다렸다가 다시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내 목적지는 이미 방향을 잃었다. 시간도 많다. 이렇게 된 김에 눈은 마주치고 돌아가기로 한다.

그 사람의 최종 목적지를 알아내자마자 등을 두드리기로 결심한다.

걸음이 멈춘 곳에서 그 사람은 담배를 꺼낸다. 필터를 물고 뻑뻑거리며 세 번의 시도 끝에 끝내 불이 붙는다.

나는 얼굴에 흐른 땀을 닦고 한 걸음씩 다가가 본다.

눈치채지 못했으면 하면서도 먼저 눈치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드디어 눈이 마주친다. 비어있던 눈에 나무가 가득 찬다. 석양도 차고. 바람도 차고. 지나가는 차도 차고.

벌어진 그 사람 입에서 꽃 향기가 나는 하얗고 뿌연 담배 연기가 요술처럼 피어오른다.

"너 왜.."

"오랜만에 만나서 왜가 뭐야."

나는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오랜만이야. 3년은 넘은 거 같은데?"

얼떨결에 내 손을 잡은 그 사람이 얼떨결에 대답한다. "그렇게 됐겠지.. 아마.. 내가 거짓말하려고 한건 아니고."

"됐어~ 괜찮아. 맘먹으면 평생 안 보고 살 수도 있던걸 내가 굳이 전화한 건데 뭐."

고개 숙여 바닥에 비벼 끈 담배꽁초를 바라보는 그 사람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고개를 들지 못했다.

"뭘 하려고 따라온 건 아니야. 우연히 보고 반가워서 얼굴만 보고 가려고 나도 용기 낸 거야. 너무 곤란한 티 내지 마. 너는 여전히 곤란한 얼굴이구나. 갈게. 반가웠어. 잘 살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반응 없는 그 사람 앞에서 괜히 피식 웃고 나는 돌아선다.

돌아서자마자 눈알에 뜨거운 물이 차오른다.  가던 길을 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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