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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꾸녕 Aug 17. 2024

손바닥 안에서

부메랑

 새벽이면 샛노란 태양이 작은 방 작은 창문을 비집고 쏟아진다.

얼떨결에 새벽에 눈을 뜬 날이면 노란 태양인줄 알면서도 괜히 어젯밤 잠들기 전 전등을 켜고 잤는지 의아한 마음으로 일어나 감탄하고 다시 자는 새벽의 반복이다.

7시에 시작되는 주말 아침.

침대 위로 손을 뻗어 창문을 드르륵 열고 바닥에 누워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개에게 말을 건넨다. 

"잘 잤어?"

10년이나 같이 산 개는 내 말을 정말 알아듣는지 밍기적 밍기적 일어나 앞 발을 더 앞으로 뻗고 엉덩이를 치켜들어 길게 기지개를 켜며 대답을 보낸다. 잘 잤다고.

 반쯤 감은 눈으로 이불을 털어 모서리를 잡아 네모로 접어 두고 침대 매트 위를 손바닥으로 팡팡 털며 이불 시트와의 뜨거운 마찰을 느낀다. 눈은 못 떠도 이불 정리는 바로 해야 한다.

 작은 방을 지나 거실까지 쏟아지던 햇살은 어느새 조도를 은은하게 데워두고 더 위로 떠올랐다. 

찬 물을 한 잔 마시고 건조한 눈을 꿈뻑거리며 아침 식사를 어떻게 때울지 고민한다.

개의 자동 급식 기계에서도 마침 아침 사료가 알람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나오고 개는 와작와작 맛있게 씹어 먹는다. 와작와작 소리를 들으니 견과류가 당긴다.

 냉동해 두었던 호밀빵 두 덩이와 견과류 10알 남짓을 접시에 담아두고 커피 마실 물을 가스레인지에 올린 뒤에 물이 끓을 때까지, 빵이 먹기 좋게 자연 해동될 때까지 창 밖에 보이는 먼 산을 가만히 본다. 먼 산만 바라본다는 일은 나에게 늘 별 의미 없는 아침의 일상이다.

가벼운 끼니를 때우고 휴대폰을 뒤적거리다가 나갈 채비를 하고 17리터 배낭에 외출 짐을 챙긴다.

읽다만 소설책 한 권, 블루투스 이어폰, 밤에 쓸 난시 교정용 안경, 물이 담긴 텀블러, 덜그덕 도시락 소리가 나는 플라스틱 필통, 냉방이 풍요로운 장소에 대배한 얇은 바람막이까지.


 집 앞 버스 정류장에 가서 먼저 오는 버스에 몸을 싣고 35분 후 도착하는 정류장에 내리기로 한다.

버스 뒷좌석에 앉아 창 밖을 보면서 35분 후에 도착할 곳이 어디인지, 어떤 메뉴로 어떤 식당에 가서 끼니를 때울지, 걷는 길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그 어떤 것도 계획한 것이 없고 이어폰에서 들리인디밴드의 노래 가사가 웃기다고 생각하면서 불안함을 잠시 잊는다.

 "너의 집 앞 화단에는 애호박이 자랐어. 네가 좋아하던 애호박 전. 하지만 나는 호박을 먹지 못했지. 그래서 우린 헤어졌나 봐."

계획이 없으면 심하게 불안한 나로서는 정착지가 없는 외출에서 오는 불안함을 애써 즐겨보는, 어쩌면 계획 없는 모험을 연습하는 시간이다. 

신호 대기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지금 하는 일은 몇 살 때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되도록이면 일은 오래 하고 싶은데 현재의 직업을 몇 살까지 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다.

왜 지금을 살면서 앞으로 할 일을 고민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지 나 자신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현재의 순간에 집중해서 살아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과거에 영차영차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현재는 또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려 하고 있고,

정해진 계획이 없으면 고민을 거듭하고 불안함을 느껴 준비할 꺼리를 찾아서 언제나 현재를 헤맨다. 

누가 닦달하고 보채지 않는데도 나의 현재는 줄곧 불안해왔다. 이런 식으로 살아서 미안함을 느꼈던 과거의 내가 명이었는지 차곡차곡 세어본다.

두런두런 생각을 따라서 가다 보니 내려야 할 시간이고 도착한 곳은 광화문이다. '에이 좀 더 새롭길 바랐는데 잘 아는 곳이네.'

모험이 시시해서 아쉬운 마음과 익숙해서 안도되는 마음을 가볍게 저글링 하며 교보문고로 향한다.

현재의 불안함을 잠재워 줄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를 찾으러.

모험은 연습해 봤자 불안한 오늘이다.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살아보는 자세를 연습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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