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 앤 테이크
우리 집 반려견과 함께 산지 벌써 9년이다.
내가 버릇을 잘못 들인 탓도 있지만 이 녀석은 진짜 급하거나 열받아서 심술부리는 경우 아니면 집에서 배변을 안 한다.
그래서 아침에는 출근 전에 쉬야 산책 짧게. 저녁에는 퇴근 후에 응가 산책 및 운동을 30분 이상 매일매일 하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우비를 입고 나가고, 영하 10도 이상 떨어지는 겨울에는 무장을 하고 나가고,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도 그냥 나가서 돌아다닌다.
비가 오던 눈이 오던 태풍이 오던 아무튼 나가서 무조건 돌아다닌다는 것인데 정말이지 가끔은 개 생각 안 하고 내 생각만 하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또 다르게 생각하면 내가 9년 동안 끈기 있게 포기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해온 일이 뭐가 있나 생각해 보면 개 산책이라도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어떤 이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일기를 쓰거나, 또 어떤 이는 매일 영어 단어를 성인이 되어서도 10개씩 외운다거나, 또 어떤 이는 매일 자기 전에 항상 명상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자기 계발의 루틴은 없어도 아무튼 뭐 하나는 있으니 다행이다.
최근에 유행하는 어떤 흐름에 휩쓸려 갑자기 루틴을 만들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매일 같은 것을 반복하는 일은 오히려 어른이 되어서 하려면 더 어렵다.
누가 하라고 하라고 보채주지 않으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의 개 배변 산책 루틴도 꽤나 자기 계발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려견이 야외 배변을 고집하는 덕분에 개는 밖에서 시원하게 배변을 하며 동네의 개들과 소통을 하고, 나는 저녁마다 고요하고 유유자적 걸으며 하루를 돌이켜보거나 멀리 볼 땐 과거들을 돌이켜보거나 앞으로를 계획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개와 함께 걸으며 개는 개의 견생에 집중하고 나는 나의 인생에 집중하는 합리적인 동상이몽 저녁 산책.
개에게 고맙다.
(단, 한여름과 한겨울은 좀 고통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