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 241201-241231
12월 일기를 쓰기 위해 1월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시간을 샀네마네 하고 있는 과거의 나, 귀엽다. 돌이켜 보면 순간순간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벌써 12월이 되어 얼떨떨한 얼굴로 복직 준비를 하고 있다. 역시 시간을 움켜잡는 건 불가능했다. 이 회고글이 유난히 잘 안 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육아일기를 마무리하는 건 이미 별 대수롭지 않은 사실이 되어버렸다. 계속되는 시간 속에서 1년이라는 관념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다. 사회의 약속, 숫자일 뿐이다. 애초에 시간은 단순히 덩어리로 끊어서 소유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바통터치 육아휴직이라는 단어도 부정하고 싶다. 주 양육자, 부 양육자 바꿔보니 누가 더 힘들고 말고가 없다. 서로가 본인대로 마음고생이다. 애자일한 운영이 더 중요했다. 그때그때 여력과 환경에 맞춰서 해나가면 다행이다. 조직문화 강의를 수없이 들었지만 이제야 체감한다. 개인을 위한 팀은 없다. 애초에 바통은 존재하지 않았다. 육상트랙도 없었다. 이건 오히려 산책에 가깝다. 큰 방향성만 있을 뿐 정해진 코스가 없다. 샛길도 지름길도 걸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육아였다. 같이 걷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지금 소중한 시간 위를 소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자꾸만 생의 유한함도 같이 안타까워진다. 덧없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들이 또 값지다. 이렇게 글로써라도 기억을 박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름 열심히 쓴다고 썼다. 누가 시키지 않은 일을 했다는 일도 뿌듯하다. 사실 팔 할은 사람들 덕분이다. 은조 덕에 더 가까워진 가족과 친구들부터 새롭게 만난 사람들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 동네의 모든 가게와 이웃들에게도 늘 감사하다. 하드모드로 살게 된 인생을 버틸 수 있는 건 관계 덕분이었다. 뿌리를 내려가며 사는 삶을 배우고 있다.
주저리주저리 말을 돌리고 있지만 아내에게 꼭 한마디 하고 싶다. 올해 정말 고마웠다. 버티어 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넨다. 휴직기간 동안 가장 많이 떠올린 사람은 과연 아내였다. 작년에 외로웠을 거라 짐작은 했었다. 직접 겪어보니 짐작만 했던 게 미안해졌다. 그럼에도 의지를 했다. 때때로 징징대며 바가지까지 긁었다. 솔직히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러겠다는 약속은 못한다. 다만 내가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행동할 것을 다짐한다. 올해 아내가 얼마나 전방위로 애썼는지 내가 그림자처럼 면면히 지켜봤다. 세상에서 제일 잘 알고 있다. 측은지심과 존경심을 담아 다정히 대하리라고 매일 결심하겠다.
끝으로 올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 우리 딸, ㅇㅇ에게도 편지를 남긴다.
ㅇㅇ야, 아빠와 엄마는 항상 너의 곁에 있다. 이 글이 하나의 증표란다. 내 사랑은 작은 씨앗이다. 네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임을 약속한다. 힘들 때는 희망이 되고, 심심할 땐 맛있는 땅콩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빠가 한 기록들이 너에게 쓸만한 로우데이터가 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다. 너의 인생으로 계속해서 덧칠해 나갔으면 한다. 그 개정판이 기대된다. 옆에서 늘 응원해 줄게. 편지도 자주 써줄게.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줄게. 우리 지금처럼 산책 자주 하자. ㅇㅇ야 정말 사랑한다. 한 해 동안 공들여 쓴 일기의 마지막 문장인데, 막상 별다른 미사여구가 생각나지 않는구나.
241202(월)-241231(화) : 어린이집 땡땡이치는 날이 많았다. 아빠와 낮시간에 이곳 저곳 돌아다녔다. 엄마아빠의 결혼기념일도 축하해주었다. 여러모로 내년을 위한 연습을 많이했다. 아쉬운 마음에 주말마다 여행도 다녔다. 크리스마스엔 트리 앞에서 감사함을 이야기했고, 마지막 날엔 달님 앞에서 소원을 빌었다.
올해 이 시리즈를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라이크를 눌러주신 그 배려가 저를 끝까지 쓸 수 있게 해주신 힘이었어요.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저도 댁의 강녕을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