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 사내가 있다. 직접 만나보진 못했다. 가까운 사람을 통해 그를 알게 되었다. 며칠에 걸쳐 그의 삶에 대해 들었다. 마침내 머릿속에서 어떤 이미지로 그려질 때쯤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만나면 무엇부터 물어볼까. 그는 어떤 이야기를 내게 들려줄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먼저 퇴근한 아내가 욕실에서 나올 때쯤 내가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다. 아내의 지난 며칠 방과 후 토픽은 새로 온 팀장이다. 그의 사연이 또한 어마어마하다.
-오빠, 새 팀장, 어디까지 갔다 온 줄 알아?
-글쎄, 어디일까.
-세상에, 이라크에 파견 갔었대.
아내는 식자재 유통회사에서 일한다. 전국 유통망뿐 아니라 해외 비즈니스도 겸한다는 말은 들었다. 회사는 중동 지역에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기로 했다. 새로운 사업 기회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다 걸기’ 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살기 좋은 어떤 나라도 아니고 모래 바람 뜨거운 이라크. 핵심 인력은 현지 파견을 기피할 것이다. 회사는 명을 거부할 수 없는 인물을 찾아냈다. 업무 능력은 나무랄 데 없으나 직언을 서슴지 않는 등 어딘가 경영진을 불편하게 하는 중간 관리자. 파견을 거부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퇴사. 회사로선 못 되어도 골칫거리를 없앨 수 있는 기막힌 묘수다. 사내는 기꺼이 파견 명령을 받아들였다. 사내에겐 처와 여식이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자그마치 이년 여를 보냈다.
사내는 모두가 포기할 거라고 예상했던 파견 기한을 모두 채우고 귀국했다. 돌아와서 공로에 걸맞은 보상을 받았느냐. 아내에 의하면 그러지 못했단다. 그 뒤로도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니며 새로운 업무를 손에 익혀야 했단다. 인력이 유출되거나 결원이 발생하면 우선 ‘땜빵’하는 특급 소방수. 잘 봐주어야 동료들은 그의 입지를 그렇게 평가했다. 팀장 직위는 유지되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회사는 온탕과 냉탕으로 정신없이 빠뜨리듯 그를 수시로 팀장으로 세웠다가 도로 팀원으로 내렸다. 회사는 사내가 어지간히 미웠나 보다.
사내는 사내(社內)에 별칭으로 통하는 인물이 되었다. 불굴의 신화, 꺼지지 않는 불꽃, 절대로 죽지 않는 불사조, 그런 것들이 그의 이름을 대신했다. 좀 전까지 다른 부서의 팀원으로 있다가 이번 인사이동에서 아내 부서의 팀장이 되었다. “오빠, 나도 그 사람 누군지 되게 궁금했거든, 실제로 보니까, 와아, 눈빛이 미륵불의 그것 같더라. 산전수전 다 겪고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실존 인물이 내 앞에 있구나, 싶더라고.” 아내는 사내와의 첫 대면을 이렇게 술회했다.
“새 팀장, 그래도 인덕 있는 사람이었나 봐.” 어느 저녁에 아내는 사내를 또 그렇게 평론했다. 낮에 사내의 전 소속 부서 동료들이 아내 사무실을 찾아왔단다. 사내가 미처 챙겨 오지 못한 짐을 상자에 담아 나누어 들고 왔다. 다시 오랜만에 다른 부서 팀장이 된 나이 많은 동료 선배의 새 책상을 신기한 듯 구경하더란다. 그러면서 아내와 다른 부서원들에게 초콜릿이며 사탕을 넣어 리본으로 묶은 작은 비닐봉지를 하나씩 내밀더란다. “우리 OOO 선배님, 아니 팀장님 잘해주세요. 꼭이요.” 다짐까지 받아내고 싶은 표정들이었다나. 이십 년 가깝게 회사에 다니는 나도 그런 우화 같은 아름다운 장면은 직접 목격하지 못했다.
선임 팀원인 아내는 사내에게 업무 보고를 서둘렀다. 아내는 왠지 그러고 싶더란다. 채근한 것도 없고 천천히 해도 아무도 뭐랄 사람 없지만 사내에겐 그렇게 해주고 싶었단다. 새 부서를 지휘하게 된 사내로서는 궁금할 것이 너무나 많을 것이었다. 그 대목에서 아내는 또 사내에게 어떤 인상을 받았단다. 아내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화면으로 띄워놓고 요목조목 브리핑할 요량으로 사내 시스템에서 회의실을 예약했다. 시간에 맞춰 회의실 문을 열었더니 다른 부서 직원들이 미처 못 끝낸 회의 중이었다. 미안하지만 비켜 달라, 하려는 것을 사내가 만류하더란다. “우리가 다른 데 가서 합시다.” 아내가 남은 곳이라곤 한 층 아래 비품 창고에 덩그러니 원탁이 있긴 하다고 했더니 머뭇거림 없이 그리로 가자, 하더란다. 체면, 모양새, 외양 이런 것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구나. 겉치레보다 본질, 핵심에 먼저 닿는 것을 좋아하는 리더이겠구나, 싶었다.
아내는 최근 정규 근무 시간을 살짝 넘기는 퇴근이 잦다. 여느 때 같으면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툴툴 대는 메시지를 보내올 텐데 잠잠하다. 집 현관문을 열어 거실에서 재회할 때에도 큰 불만의 표현은 없다. 사내, 새 팀장에 대해 물으면 아직까지는 트러블 없이 손발 잘 맞춰가는 중이란다. 이전 팀장들보다 명석하고 적극적이어서 좋단다. 전에 왔다 간 팀장들은 지원부서의 업무 특성에 실망하거나 심드렁해하며 주어진 임기(?)만 채우겠다는 의지가 역력했단다. 아내의 직장 생활에 새 바람이 불어온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가만 보니까 새 팀장, 오빠랑 비슷한 면이 많아.” 엊그제는 아내가 뜬금없는 결론에 이른다. “나도 이라크까지 갔다 와야 할라나?!” 내 말에 아내는 “오빠는 거기까지는 못할 것 같은데. 부인, 나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소. 빨리 다른 일 찾아봅시다, 할 게 빤해.” 말한다. “흥, 나도 처자식 위해서라면 중동 어디가 아니라 남극, 북극이라도 마다할 가장이 아냐, 어디 한 번 보라지!” 응수했다. 며칠 아내와 나의 저녁에 화제의 인물로 오르내린 사내와 그의 가족의 앞날에 저물지 않는 희망이 계속되길 ‘남 일 같지 않은’ 마음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그를 언젠가 꼭 한 번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