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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Mar 01. 2019

퇴사보다 존버를 택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버틸 수 있는 맷집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을 여러 번 옮기면서 신입사원 때마다 자주 들었던 말이 바로 "버텨"라는 말이었다. 신조어로는 '존버'라고 하더라. 1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고 돌아볼 여유가 생길 때쯤 저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존버 : 존나게 버티기(견디고 또 견딘다)


<출처 : 나무 위키>


적성이나 꿈도 중요하다. 하지만 직장생활 시작부터 적성에 맞고 잘할 수 있는 일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일정 시간을 적응하고 버티다 보면 익숙해지고 노하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4번의 직업을 가졌다.

첫 번째는 군인, 두 번째는 영업사원, 세 번째는 사내강사, 네 번째는 영업관리자

회사나 직종의 연관성이 없다. 전공과도 무관한 일이다. 직업을 바꾼 이유는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그 말인즉 별로 잘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직에 대한 후회는 없다. 다만 앞선 3가지 직업에서 3년을 채우지 못했기에 조금 더 해봤으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짧게는 8개월 길게는 2년 4개월간 일했다. 길게 했던 업무일수록 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그 시기에는 직업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신경 쓰였고, 다른 업무에 종사하는 지인들을 보면서 동경하기에 바빴다. 일의 어려움을 극복하기보다 그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자꾸만 도망가고 싶었다.


현 직장에서도 도망가고 싶었다.

현재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입사원 때 나는 맨땅에 헤딩하듯이 변방에 홀로 보내졌다(사무실에 혼자 있으니 누가 뭘 해라 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전임자가 몇 달간 업무를 손 놓고 퇴사해서 인수인계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멀리 떨어진 곳의 상사와 선배에게 업무를 배우기도 어려웠다. 그냥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했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깨지기 일쑤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나보다 10살 이상 연배가 높았고,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 대화를 나누기도 쉽지 않았다.


당장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밀려왔다. 하지만 곧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었다. 혼자였을 때는 이직 하기수월했다. 어느 지역이든 근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자리를 잡으면 움직이는 것이 어렵다. 이직, 부서이동도 쉽지 않았다. 유일한 해답은 존버(존나게 버티기)였다.

 

https://brunch.co.kr/@hoonlove0303/1


암울하고 답답했던 시기

브런치를 막 시작할 당시 쓴 글이다. 지금 봐도 당시 상황이 답답하고 암울하다. 입사한 지 3년이 다 되도록 내가 몸으로 부딪쳐서 얻어낸 방법으로 직장생활을 했다. 잘할 턱이 없다. 동기들은 요직(본사나 서울)에서 자리 잡고 업무를 익혀가는 동안 나는 변방(지방 지사에서 떨어진 독립 사무실)에서 죽을 쑤고 있었다.


상사는 업무에 대한 질문을 하면 화를 내면서 이런 말을 했다.


"너 초등학생이야? 내가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돼?"


업무적인 질문을 극도로 싫어했다. 업무에 관심이 없었고, 윗선과의 관계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10살 이상 많은 바로 윗 선배는 자꾸 나를 괴롭혔다. 평가를 같이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나를 경쟁자로 보았던 것 같다. 트집을 잡거나 상사에게 나의 험담을 했다. 술자리에서 자꾸 퇴사하라고 했다.


"나이 들기 전에 빨리 나가. 너는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어"


나를 위해서 하는 말 같이 들리지 않았다. 내가 못하거나 없어지길 바라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배우지도, 하지도 못하고 그냥 있으나 마나 하는 사람처럼 마지못해 다녔다.


존버 끝에 기회가 왔다

새로운 상사가 부임했다. 중국지사에서 오래 근무하다 오신 분이었다. 능력 있고, 평판이 아주 좋았다. 그분이 처음으로 업무지시를 했다. 간단한 보고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보고서를 제출했더니 상사는 한숨을 푹 쉬었다.


"백지상태구나. 의자 가지고 내 옆에 와서 앉아라"


1부터 하나씩 일을 배웠다. 입사한 지 3년이 넘어서야 처음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업무를 배울 수 있다는 자체가 감격스러워서 하라는 대로 다 했다. 그때가 입사한 이래 직장생활이 가장 재미있었다. 사람 구실을 하는 것 같았고, 월급을 받아도 미안하지 않았다. 야근도 많이 하고, 주어지는 업무도 점점 많아졌다. 그래도 회사가 즐거웠다.  


상사와 같이 일하면서 더 일을 배우고 싶었지만, 능력 있는 사람은 위에서도 알아보는 것 같았다. 1년 만에 본사로 승진해서 올라가셨다.


직장에서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것도 운이다

그리고 새로운 상사가 부임했다. 꼼꼼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스타일이었다. 처음 보고서를 작성해서 검토받았을 때 8번은 수정 보완을 했다. 함께 근무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수정본의 개수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피드백하고 업무를 많이 가르쳐주셨다. 개인적으로 불러서 업무 외 조언이나 직장생활에 대한 팁도 많이 알려주셨다. 이 상사 역시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했다. 상사 밑에서 꾸역꾸역 일하다 보니 나 또한 인정받고 승진하게 되었다.


운이 좋았다. 그런데 3년 넘게 괴로운 시간을 존버 하지 않았다면 좋은 상사를 만나서 일을 배울 수 있는 운을 얻을 수 있었을까? 힘든 고비를 만날 때 친한 선배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일희일비하지 마라"


이 말은 직장에서 존버 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고비가 올 때가 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마주하고 피해를 보는 일을 겪게 된다. 그럴 때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았다. 지나면 괜찮아진다. 만회할 기회가 생기고, 좋아질 방법도 찾을 수 있다. 자주 떠올리는 말 3가지


일희일비하지 말자.

스스로 무너지지 말자.

남과 비교하지 말자.



※ 퇴사할지 존버 할지 매번 선택의 순간에 놓입니다. 기회와 선택의 폭이 넓은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퇴사(이직)를 택하고, 그 이후에는 존버를 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지는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산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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