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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Nov 17. 2023

서울, 2023년 겨울

서울, 1964년 겨울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안이 말했다.』
(서울, 1964년 겨울 중 일부)




김승옥 작가의 단편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을 처음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겨울밤에 만난 세 명의 사람이 다음날 아침까지 함께하는 이야기가 뭐 재미있나 싶겠지만, 덥기로 소문난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내게 차갑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해 보이는 ‘서울’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른이 되면, 서울에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였다. 살갑다 못해 오지랖이 넘치고, 따듯하다 못해 뜨겁기만 한 고향을 떠나 무심하고 춥더라도 이성적인 곳에서 살고 싶었다. 열일곱의 나는 그랬다.

그렇지만 사실 김승옥 작가의 ‘서울, 1964년 겨울’은 대도시의 쓸쓸한 감상을 담은 작품이라기보다는, 무기력하고 비인간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작품에 가깝다. 실제로 여러 부자와 다수의 빠듯한 이들이 각자도생 하기 바쁜 곳이 1960년대의 서울이었다. 또한 산업화의 네온사인 아래 개인의 갖은 욕망이 들끓는, 가장 화려한 도시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여러 지역 출신의 사람과 서울 토박이가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기 바쁜 곳. 2023년의 서울은, 세계화의 파란불 아래 온갖 사람들의 욕망이 들끓는 치열한 도시이지 않은가.

한강의 기적을 그대로 체화한 도시지만, 한강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곳 역시 서울이다.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 한강에서 삶을 끝내고자 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곳이다. ‘혼자 있기 싫다’는 사람에게 ‘혼자가 편할 것이라’ 답하는 서울은, 한강의 기적에 고이고 말았다. 낙동강, 금강, 영산강으로까지 뻗치지 못한 채 말이다. 최근 논란이 된 김포의 서울 편입을 보며, ‘서울’이라는 행정 구역으로 묶이는 것만이 능사인가 하는 마음이 들었던 까닭이다.

스물일곱의 나는 10년 전 마음먹었던 대로 서울에서 지내고 있다. 서울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도시다. 그탓에 제설작업이 늦어지는 날엔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하곤 했다. 나 역시도 그중 하나였다. 눈 오는 날 소주를 마시고 휘청거리며 ‘길이 왜 이렇게 미끄러워’라며 짜증을 부리고 집에 들어가던 늦은 밤, 야광 조끼를 입고 제설차를 몰던 이들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주량을 한참 넘겨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와중에도 5평 남짓 자취방에 누워 한참을 생각했다. ‘서울은 차가운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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