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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titbe Oct 27. 2024

카페 사전답사

길치 극복기

가을 날씨는 집에 있기는 너무 아깝다.

하늘은 푸르고 은은한 단풍색과 바람이 너무 선선하니 좋으니 집순이도 가을만큼은 콧바람을 쏘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는 언니와 차 한잔 약속이 잡혔는데 너무 좋은 날씨에 야외가 있는 카페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둘 다 운전은 가능하지만 겨우 운전하는 생계형 스타일이고 심각한 길치인 탓에 매번 집 앞으로만 다녔는데 오늘도 역시 집 앞에 카페에 갈 생각을 하니 많이 아쉬웠다. 운전실력을 타박하면서 검색창에 분위기 좋은 카페만 검색하고 가지도 못하고 아쉬워해야 하는 상황이 오늘따라 스스로가 새삼 못마땅했다. 남들이 맛있다고 분위기 좋다고 써놓은 리뷰를 보는데 눈으로만 보는 상황이 슬금슬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편께 부탁을 했다. 오늘 가고 싶었던 카페를 내가 운전대를 잡고 남편은 옆에 동승해서 미리 함께 가보자는 부탁이었다. 쉽게 말하면 사전답사를 시켜달라는 것이다. 차로 가까운 거리라서 부탁하는 나도 우물쭈물했고 남편 또한 어이없어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와이프의 운전실력을 익히 아는 바, 흔쾌히 허락했고 살짝 긴장한 마음으로 남편 옆자리에 태우고 카페로 향했다. 우리 동네가 아닌 곳은 내게 다 낯선 곳이다. 내비게이션을 틀고 가는데 안내멘트가 역시나 익숙하지 않은 것이 귀에 쏙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은 그 와중에 옆에서 나의 운전습관에 대해서 지적했고 나는 마치 도로주행을 보는 초보 운전사 같았다. 어쨌든 카페에 무사히 남편의 도움으로 도착했고 집으로 가는 길도 잘 외웠다.

"카페를 사전답사를 하기도 하네" 하면서 남편은 나를 묘한 눈빛으로 놀리듯 바라봤지만 "운전 연습으로 도로 주행한 것이라고 생각해" 하면서 어쩔 수 없는  나도 이런 상황이 어처구니없어서 슬쩍 농담으로 받았다. 아는 언니는 나의 아침부터 사전 답사했다는 말에 웃으면서 재밌어했고 나는 이번 기회에 우리도 이제 좀 달라져야 한다고 몇 번 용기를 얻어보자며 다짐했다. 남들이 우리 이야기를 엿듣노라면 전국을 차로 여행하는 여행자인 줄 알겠지만 운전을 하면서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을 불안해하는 길치인 우리에게는 소소하고 중요한 다짐이다.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고 기억을 살려서 가고 싶던 카페에 도착해서 맛있는 디저트와 커피를 야외에서 마시면서 가을날의 좋은 시간을 즐겼다. 빵도 맛있고 커피도 진하고 좋았다. 물론 돌아오는 길은 조금 더 빨리 좌회전을 해서 남편이 일러준 대로 오지는 못했지만 가다 보니 내가 알던 주변 길이 나왔고 그렇게 길과 길이 만나는 지점을 알게 되니 재밌기도 했다. 오늘 카페탐방은 마치 큰 일이라도 한 듯이 평상시보다 뿌듯한 나들이였다.


집에 와서 가만 생각하면 나도 스스로에게 한계를 정해놓고 있었다. 차가 있으면 뭐 하고 운전경력이 많으면 뭐 하나. 길치라고 스스로를 확정하고 내비게이션을 마냥 어렵게만 생각하고 가까워질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으니 남들이 보면 답답해 보였을 것 같다. 길치라고 생각되면 더 주변을 살피고 다니면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남들은 내가 길을 모른다고 하면  내비게이션으로 찾아가면 된다고 했지만  봐도 모른다고 나를 정당화시켰고 용기 내지 않았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것일까.

가을날이 너무 좋은 탓이었을까.

이런 날 집에만 있는 것이 억울한 탓이었을까. 


노력을 하지 않고 '난 그래'라고 규정지었던 것에 대하여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도전하지 않고 주저하는 것도 오기가 생겼다. 어쩌면 그들의 말이 맞는 말이다. 노력도 하지 않고 쉽게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공간적인 능력이 좀 부족한 것도 사실이고 낯선 곳에 대한 불안감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언젠가 무모하게 눈으로만 보던 길을 그래 한번 가보겠다고 내비게이션을 틀어놓고 갔는데 0.3킬로를 남겨놓고 결국 주변만 헤매다가 어쩔 줄 몰라하면서 힘들었던 적이 있다. 길치가 아닌 사람은 이런 상황이 완전 이해가 안될지 모르지만 길치인 내게는 유난히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겁부터 덜컥나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경험은 역시 나는 내비게이션을 보는 것조차도 힘들구나 하면서 더욱 나의 한계치를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 되리라는 생각을 버리고 차츰 그렇게 연습해 가기 시작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옆에서 아무리 옳은 말을 말해도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때가 있듯이 나도 그동안 그랬던 같다. 그러나 오늘을 기점으로 나는 조금 달라질 같다. 내가 마음을 달리 먹었으니 말이다.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처음은 낯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금씩 더디게라도 시작하면 받아들이는 것이 수월했을 텐데 내 마음속에 처음부터 척척 잘하고 싶은 과한 욕심이 있었나 싶다.


다음에는 어느 곳을 갈까.

먼 곳은 아니라도 차츰 내가 운전해서 갈 수 있는 새로운 곳을 늘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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