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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감성 수필>  강아지풀 억새풀 꺽이지 않는다

한겨울에도 꺾이지 않는다. 

by 호프맨작가 Jan 20. 2025


지난달 출장 여행에서 11월 말 상하이 추위는 한국의 추위 못지않다. 상하이의 작은 공원에서 만난 강아지풀 숲에서 그들의 억척같은 삶이 감동을 주었다. 상하이 사진첩들을 열어보고 그때 그 풍경들이 사람들에게 주는 그 메시지들을 적어본다. 



하나, 저렇게 얇은 몸매로 저토록 길게 자라난 억새풀은 나무보다 강하다. 



흔히 근육질의 남성이 강인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우리 세상에 억새풀을 정말 외계 생명체다. 


가냘픈 부들부들한 몸으로 어떻게 강추위 속에서도 살아남을까?


억새풀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자긍심으로 버텨낸 것일까? 


아름드리나무숲을 올려보지 않고 스스로 옹기종기 모여서 군락을 이루는 억새풀 숲에서 


강해지는 다른 차원의 방법을 알게 된다. 



"서로를 의지하여 쓰러지지 않고 흔들리다가 다시 중심을 잡게 되는 법이다."


"혼자가 아니고 함께 모여있으면 저토록 무너지지 않고 강인한 집단이 되는 법이다."  


"바람이 불면 서로 부등켜안고 소리를 낸다. 서로 응원하는 소리라고 믿어본다." 









둘, 강아지풀이라고 부르는 이들 식물들은 꽃보다 아름답다. 



하늘거리는 강아지풀은 꼭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거리는 것 같다. 


어려서 저 강아지풀을 가져다가 친구들에게 간지럼을 태운 적이 있다. 


강아지풀은 꽃 대신 저렇게 부드러운 이삭들을 촘촘하게 달린 것이다. 


이삭들이 흔들리는 춤을 감상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 율동에 시름도 있고 동심으로 돌아갈 것만 같다. 








셋, 억새풀, 강아지풀은 초원의 잔디 숲의 꿈이다. 



잔디풀은 저렇게 크지 않았다. 언제나 밟혔다. 그래서 무시당했다. 하지만, 억새풀은 밟을 수 없다. 


오래전에 사극에서 정치 세도가의 표현이 잊히지 않는다. 


"민중은 백성들은 갈대와 같아서 바람에 따라 흔들린다."


억새풀은 갈대가 아니다. 억새풀로 자란 사람 키만 한 이 왕성한 생명체는 바람에 흔들려도 결코 쓰러지는 법이 없다. 




억새풀은 누워서 자라다가 성장하면서 비스듬하게 서는 법을 배운다. 


이는 사람이 유년 시절에서 성인으로 자라는 과정과도 같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 비로소 자존심과 자긍심을 갖춘 독립된 인격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누구와도 대체될 수 없는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우리의 꿈은 절대 밟혀서도 안되고 포기되어서도 안된다. 




https://blog.naver.com/seolhon/223680678541

블로그 안에서 억새풀 영상 보셔요..



00:14



억새풀 사잇길을 걸으면서 제주도의 억새풀 초원이 기억났다. 


상하이의 억새풀 숲은 제주도의 그곳을 연상시킨다. 


제주도의 초원, 벌판에서 흔하게 만나는 억새풀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천상 한국 사람이고, 제주 사랑을 벗어나지 못한다. 


상하이 땅에 와서 고국의 억새풀을 추억하는 것도 작은 나라 사랑이 아닐까! 


고국의 공원, 사잇길 이렇게 거닐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숨을 들이켰다. 








올해 우리 모두의 길은 이렇게 강인하고 튼실하게 뻗어나기를 바란다. 2025년의 1월도 무르익어간다. 


새해의 하루하루도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소망하는 꿈을 이루리다. 


동장군이 손발을 시리게 하는 고국의 1월, 억새풀의 사잇길처럼 거닐면서 다다르고 싶다. 


1월 말 휴가 기간 1주일 동안 고향 방문을 할 수가 있다. 


휴가를 기다리면서 내 마음은 날마다 강아지풀처럼 춤을 춘다.


하지만 춤만 추어서는 줏대 없이 흔들리는 갈대로 보일까 두렵다.  


올해도 이 억새풀 같은 외유내강의 정신을 담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  








이 나뭇 판자가 보이는 저 나이테의 상처, 틈새, 구멍, 흘긴 자국을 보면서 잠시 멈추면서 천천히 걸었다.


나무는 이렇게 죽어서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길이 된다. 


살아서 생명체들을 보호하는 수호 나무였을 터인데, 죽어서도 그 숭고한 의무를 다한다. 


저 나뭇 판자 사잇길을 걸어서 억새풀 숲을 감상하던 그때 그 순간, 


나의 마음은 식물이 되었다. 감정을 애타게 숨기고 추위에 떨면서도 굳세게 살아가는 식물이다. 


연약할 것 같은 식물들은 나무들도 억새풀도 이렇게 잘 버텨내고 있다. 


인생은 억새풀 같다. 겉으로는 하늘하늘 연약하게 흔들려도, 바깥에서는 미소를 흘리면서도, 


안으로는 나무처럼 단단하게 의무를 이해하는 식물들 같다. 


우리 사람들의 삶은 흔들려도 속은 꽉 차게 올곧게 살아내야 하는 식물과 같다. 


억새풀처럼 드라이플라워로 조연으로 장식용이 되어도 좋다. 꽃이 피는 곳에 함께 살고자 한다. 


지금은 저 억새풀들이 눈에 묻혀서 볼 수 없을지 모른다. 나에게 주는 커다란 메시지를 잊지 않으련다.  


나는 듣는다. 억새풀이 서로 부등켜안고 소리를 낸다. 서로 응원하는 소리라고 믿어본다.


사람들도 서로 밀어내지 말고 부등켜안고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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