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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잡남 Dec 20. 2018

참견하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전체주의안에 갇힌 대한민국

  한국사람들만큼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왜이리 참견을 좋아하는 것일까 생각을 해봤다. 우리가 오랫동안 똑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똑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음식을 먹고 살다 보니 다른 것을 추구하는 이가 나타나면 어떻게든 재단하려 드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일전에도 나누기는 했었다.


https://brunch.co.kr/@hosueng/101

https://brunch.co.kr/@hosueng/102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수록 더욱 심각해지고 있음을 요새 관찰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점퍼의 색상이 검은색, 회색이다. 원색에 가까운 색이든 다양한 색상이든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 거의 획일화된 옷차림부터 시작해서 나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이상한 관점으로 사람을 판단하기 시작한다. 그 중 나만의 공간에 대한 잔소리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우리의 삶에서 공간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개개인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장소라고 여겨진다. 유일하게 내가 나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애착은 남녀노소 불구하고 모두에게 존재한다. 사람은 누군가 나의 영역으로 침범해 들어올 때 기쁨보다는 불안감을 먼저 느끼고 낯선 이에 대한 거부감이 절로 생기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 만나는 사람의 집이나 누군가의 공간에 들어가게 될 경우 어색해하고 편하게 앉아도 불편함을 느낀다. 내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요하기에 해외에서는 개인공간을 어떻게 쓰든지 전혀 터치를 하지 않는다. 지저분하든 깨끗하든 그것은 본인에게 속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하기에 절대로 건들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일단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적질을 시작한다.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본인의 차도 아니고 돈을 내고 이용하는 차도 아니고 집도 아닌데 이것저것 놓으면 좋다. 청소 좀해라 등등 굳이 하지 안해도 될 이야기를 상대편을 위한 것이라며 늘어 놓는다. 아주 깨끗하게 사는 것이 편한 사람은 그렇게 할 것이고 적당히 사는 것이 편한 사람은 그렇게 살 것이다. 그런데 참견을 한다.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과
'다르다는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기'때문인 것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근본적으로 묻자면 이것저것 놓으라고 하는 거면 놓을 물건이나 사주고 그런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지저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대가 나대신 차를 청소를 해줄 것인가? 내지는 세차 비용을 지불해줄 것이냐는 말이다. 나의 사적인 공간을 당신에게 제공했고 당신을 위해서 노동을 제공하고 편의성까지 제공을 했다면 적어도 그에 대한 잔소리, 참견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말과 막말을 던지는 것인가.


  위와 같은 고민과 생각을 하다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상대편에 대한 이해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전체주의에 입각한 불안한 사회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다양성과 상대에 대한 존중을 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이전보다 더 무서운 획일화를 경험하게 되는 회색도시가 되어 갈 것이다. 이것은 결국 자멸을 불러오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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