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발가락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
초등학교때부터 사춘기 시절인 고등학교때까지 나는 누가 내 발을 보는게 싫었다.
요즘이야 맨발에 구두도 신는게 보통인데 그 땐 그렇게 싫어 무조건 발목까지 양말을 신었고 체육대회가 끝나면 양말을 벗어도 신고 있는 것 마냥 양말 안의 하얀 속살이 부끄럽게 웃겼다.
발가락은 딱히 정말 예쁠 수 있는 부위가 아닌데 이뻐할 생각보다는 그냥 미운털이 박힌 부위랄까. 그냥 왠지 더러울 것같고 왠지 냄새날 것같고 그냥 우습게 생겼다. 좋아하는 일본만화 짱구에서도 아빠의 발은 치명적 무기가 아니었던가. 그래서일까. 내가 상대방의 발까지 예쁘게 생각한다면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는거라고 은근히 맘 속 기준을 정했더랬다.
그런데. 결혼을 발이 깨끗한 남자와 했네? 웃긴 소리긴 한데 남편은 발냄새가 안난다. 굳이 나는지 확인하려고 코를 들이댄적은 없지만 발이 건조한 편이라 냄새가 안나는 편이란다. 처음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같은 니트 운동화신고 눈을 맞은 적이 있는데 젖었던 내 신발에선 부끄러울 정도의 냄새가 났고 남편의 것에선 냄새의 자취가 없었다. 일부러 발보고 결혼을 한 것도 아니지만, 정말 희한했다. 지금도 잘 때 빼꼼히 나온 발은 참 매끄럽다. 손바닥 발바닥 강자라는 자신감 뿜뿜은 인정.
딸 하나를 낳았다. 그 녀석의 마른 듯한 길쭉한 다리 끝의 발꼬락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굳이 비교를 하자면 손가락보다 발가락에 정이 더 많이 갔다. 더듬더듬 말을 배워갈 적에도 발을 위한 기도를 빼먹지 않았다. 매일 목욕시간에도 발을 위한 기도를 빼먹지 않았다
하나님,
꼬물꼬물 요 작은 발로 걷고 뛰고.
발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 작은 발이 너무 고맙고, 또 감사드립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보며, 언제 이리도 많이 컸나싶은게 얼굴의 눈코입도, 손의 톡톡함도, 길쭉한 다리도 다 제각각 자기 모습으로 어필하지만 내겐 발이 가장 큰 차이로 느껴진다. 언제 쭉, 이리도 길어졌는지, 이렇게 얇지만 단단해 졌는지. 동생이 태어나고 우리 관계의 확인을 위해-동생이 태어난 후 첫째의 역할은 참 고달프다- 잠들기전 매일 발마사지를 했다. 가을이기도 했고 꼬물꼬물 발가락에 담긴 몸 전체 피로를 풀어주고도 싶었다. 발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하니 심신의 안정이 되고 대화도 조용하게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론 마사지를 위해 발을 묶어둠으로써? 잠을 청하는 약간의 목적도 있긴 했지만..아이는 너무 좋아한다. 나도 그 시간이 너무 따뜻하다.
둘째가 태어났다. 손도장 발도장 찍고 감탄하고 감사하는데 어찌나 작은 발이던지. 그 발의 느낌에 뭉클했다. 다리로 얼마나 잘 차는지, 맘에 안들면 울면서 발길질을 한다. 작은 힘이지만 그 발길질에서 큰 생동감이 느껴지고 또 감격한다. 가을에 태어나 100일동안 서늘해진 기온에 발시 시릴까 양말을 신겼다. 젖을 달라거나 안아달라 낑낑거리곤하는데 이상하게도 항상 한쪽 양말만 벗고 있는다. 반항의 표시인가. 냉큼 나온 그 발이 너무 웃기다.
아직 단 한번도 땅을 향해 무게를 싣지 않은 이 발은 바닥도 도톰하니 입체적이고 옆에서 보는 발은 이게 발인가 싶을 정도로 위아래가 동그란 모양이다. 이 작은 발이 주는 감동은 무엇인가. 앞으로 걸어야할 수많은 시간 전에 걱정스런 맘도 살짝 있는게 대견스럽기도하고, 기대되기도 하고. 여하튼 이 쪼끄만 발을 잡고 한참을 감격한다.
발이 주는 의미가 사춘기때 맘먹은, 단순하게는 내가 발까지 사랑라면 진짜 사랑하는거야 할 정도로 남의 발에 그렇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이 발에 대한 관점은 사춘기를 지나 성숙해졌다.
발은 삶의 무게를 대변한다. 작은 발한평에 몸 전체의 무게를 이고 평생을 고생해야하는 이 발이 참 고맙다. 이 발로 걷고 또 신나게 뛰면서 즐거웠던 날, 그에 반해 걷고 뛰느라 힘들었던 이 발에 고맙다 이야기한다. 그리고 내일도 잘 부탁한다 이야기한다.
작은 발가락하나도 불편하면 전체가 움직이기 어렵듯이 작은 역할도 소중하다는 것과 내 몸에 대한 감사의 시작으로 고맙다 이야기할 수 있어야하고 또 그래야한다고 얘기한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발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을 잊지 않는다.
자신의 발을 사랑할 줄 알고 그처럼 다른 사람의 발도 존중할 줄 아는 높은 자존감과 포용감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성장이다. 자신의 발을 이렇게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가장 낮은데부터 이미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SNS 악플러들을 마주하고 살아가야하는 이 세대는 단단한 자존감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힘드니까, 높은 자존감을 위해 단단히 밑작업을 매일 매일 해주고 싶다.
나는 내 가족의 발을 사랑한다. 발도 안사랑해? 할 수도 있고, 발까지 사랑해? 할 수도 있지만 이러나 저러나 내가 나의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발꼬락 하나까지 포함한다. 냉정했던 발의 철학에 새로운 범위의 사람들이 생겨난게 참 행복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