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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라a Oct 16. 2021

나도 애지중지 딸이었는데

엄마가 ‘나’를 생각할 때, 엄마의 삶


많이 속상할 것 같다.
내가 그냥 그렇게 산다면


 가만히 아이들을 보다가 엄마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떠올리니 코끝이 찡하다.

 엄마에게 자식은 털끝 하나도 귀하고 귀하다. 딸을 키워보니 알겠다. 안 이쁜데 하나 없고 안 이뻐도 예쁘고 또 예쁘다.

 또르르 꽃잎을 굴러가는 물방울과 같아서 영롱하기 그지없이 아름답고 꽃잎의 향을 담은 것도 같고 잎새에 미끌어 떨어질까 조심스럽고.  조마조마한 마음이 가득이다. 이뻐서 어쩔  모르겠다.

 하는 행동은 어떤지. 미운 행동이 있다 하더라도 그날  잠든 모습에 모든  정화된다. 하다못해 우는 모습도 너무 예뻐 가끔 화가 나다가도 그냥 안아주게 된다. 어이가 없다. 검은색 가득 수묵화처럼 화를 내다가도 물기 가득한 붓이 머금은 붉은색  방울처럼 아이의 우는 모습이 내게 닿는 순간, 나의 수묵화는 색을 입고 붉은  가득 사랑이 넘친다.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해

  우리 엄마도 그랬겠지. 나를 너무 이뻐했고 나를 너무 자랑스러워하셨다. 처음 반장을 했을 때, 아닌 척했는데 전교 회장이 됐을 때, 대학에 입학했을 때. 사실은 입사했을 땐 막 좋아하진 않으셨던 것도 같다. 공부를 더 하길 원하셔서. 입사한 회사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도 별로 좋아하진 않으셨다. 대학원에 가서 결혼을? 했을 땐 반기진 않으셨다.

나중에 이야기했을 때
네가 반대한 결혼을 했다고 하게 하고 싶지 않아.

 아주 멋진 대답으로 양보해 주셨다. 그래서일까, 아이를 가졌을 때도 많이 좋아하실 거라는 생각을 나는 못했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매일같이 보고 싶어 하시고 그 모습 하나하나가 그냥 지나간다는 사실에 아쉬워하셨다. 매일의 일상을 궁금해하셨고 별아이가 잠이 들어 누우면 옆에서 지긋이 바라보고 계셨다. 융단폭격의 별아이 잔소리를 듣는 건 내 몫이지만 그 폭격 속에서 별아이는 외할머니의 반짝반짝 예쁜 보석이었다. 두찌가 태어나곤 그 모습이 눈에 어려 헤어진 다음날엔 잠도 잘 못 주무신다 했다. 감사할 따름이다.

 한 번씩 아직도 내게 배움을 권하고 성장을 위한 잔소리를 하신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그 잔소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냥 아이들에게 사랑을 가득가득 주며 양육에 힘쓰는 것에 집중했다. 물론 그런 양육도 아이들이 이뻐서 당연히 더 신경 쓰시는 엄마다.

 한날은 가만히 별아이를 보고 있는데 문득 궁금했다.


넌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

  

 지금까지 아는 직업이 별로 없는지라 대답을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캐리 언니랑 같이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묻고 나니, 마음 한편이 먹먹하게 젖는 느낌이 들었다.


넌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데?

 

 나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사실은, 별아이에게 했던 그 질문이 내 가슴속에 콕 박힌 것이다.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워본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그 안에 나는 없었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그땐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별 아이가 하루하루 크고 한살이 더 먹고 나니 나중에 내 딸이 이렇게 생각하면 엄마인 나는 너무 속상하거나 서운할 것 같았다.

 너의 삶을 잊지 마.

 엄마가 하는 소리는 그냥 잔소리로 생각했다. 단지 뼈 때리는 잔소리. 회사를 다니고 육아휴직 지나면 더 회사를 열심히 다니고. 그 전엔 아이들을 이쁘게 잘 키우면 그게 다라고, 그래도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면! 우리 엄마는, 애지중지 나를 키웠고 나를 보석같이 귀하게 여긴 나의 엄마는 서운할 것 같다.


 남편은 웃으면서 말할 때가 있다. 네 회사를 가장 평가절하하는 사람이 장모님이라고. 외국계라 엄마가 잘 몰라서 그래-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가 나를 애지중지하는 그 마음의 깊이를 따라올 수 있는 곳, 이곳이 종착점이 아니라고 얘기하시고 싶었던 거다. 그 자리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으로서 발전하길 바라는데 엄마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뭐가 멋진 사람인 건데? 성공한 사람, 멋진 사람 엄마가 좋아할 사람, 사실 그게 뭔지 정해진 건 없다. 갑작스레 사람을 구하는 의사가 되거나 사람들의 삶을 이끄는 기업인이 될 리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단지 그 자리에서 멋진 엄마로서만 사는 것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으로서 계속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런 자랑스러운 딸이 멋진 것 같다. 최근엔 딸을 낳는 것 말고는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뭔가를 해드린 적이 없다. 물론 엄마를 위해,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만을 위해 사는 것도 나답게 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분명하다. 내가 나로서 사는 모습에 성장과 발전을 더해가는 삶, 그것이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나도 내 딸에게 이런 마음을 가질 것 같다.

 가만히 가만히 지켜보던 딸의 콧망울에 내가 보인다. 우리 엄마도 한 번은 잠든 나를 이렇게 본 적이 있다. 눈을 감고 있던 나였지만 엄마의 따뜻한 시선을 나는 기억한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영원히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다.

 사랑한단 말 한마디에 담기에 넘쳐나는 그 마음이다. 말을 통해 듣지 않아도 내가 별아이를, 두찌를 통해 느끼니 열심히 살아온 지금의 내가 너무 작은 느낌이다. 아직도 나의 삶은 생기 넘치고 삶이 활짝 펴기까지 그 과정에 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만이 내 삶은 아니다. 나를 위해 혹은 나를 통해 삶을 살아온 우리 엄마를 위한 나의 삶도 잊지 말아야 한다. 잠깐이지만 희미했던 나의 횃불이 반짝 빛을 낸다.

 그리움이 깊은 밤이다. 바짝 정신이 드니 이불 킥이다.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운 밤이다.


 덧글. 매일 집에서 고군분투 아이들과 지내고 있노라면 나는 이러려고 태어났나 싶기도 하고 이쁜 아이들과는 별개로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자책 아닌 자책이 들며 씁쓸해질 때가 있다. 육아휴직이 끝나기 직전 빨리 일을 시작하고 싶은 맘이 커지는 이유이다. 아이를 위한 엄마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 가운데 본인이 얼마나 소중한지, 당신의 삶은 얼마나 귀한지 잊지 말길 바라며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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