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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목 Mar 04. 2023

커피 한 잔 하고 가 <1부>

커피 한 잔의 역사

 우유부단하고 꼼꼼하지 못한 성격 탓에 나는 한 번에 끝낼 일을 두 번, 아니 그 이상 반복해야 할 때가 많다. 건망증 같기도 한 것이 때로 짜증 나기도 하며 자책할 때가 있다.


 농지법 개정으로 인해서 그동안 개인 대 개인으로 작성했던 임대차계약서를 이제는 농지은행이라는 곳을 통해 작성해야 한다. 종이 한 장으로 끝났던 계약서가 이제는 등본이며 인감증명서며 갖가지 서류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내가 임대를 해서 농사짓는 농지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어버린 어르신들이 빌려주신 농지들이다. 그분들 중에는 거동이 불편하고, 귀가 어두우셔서 잘 듣지 못하시고, 손이 떨려 글씨를 잘 쓰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께 새로 바뀐 농지법에 대해 설명하고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그리 순탄치 않은 일이다. 

 

  나는 5년 동안의 계약기간이 끝나서 집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내가 사는 시골보다 더 시골마을로 가고 있었다. 농지은행 직원의 설명을 듣고 필요한 서류들을 받으러 가는 것이었다. 집은 아주 오래된 시골집이었지만 정리정돈이 잘 되어 깨끗했다. 크지 않은 집, 넓지 않은 마당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가득 차 있었다. 

 "계세요!"

 인기척이 없다. 

 "어르신 안에 계세요!"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자 그제야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누구야..."

 "어르신 땅 부치는 청년입니다"

 "누구라고?"

 현관문이 삐걱하고 열리더니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땅 부치고 있는 청년입니다."

 "아! 노동리?"

 "예! 노동리 사는 청년입니다."

  할아버지는 나를 노동리 사는 청년이라고 입력해 두신 모양이다.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니 볼 때마다 누군지 모르겠네..."

  5년 동안 세 번, 두 번은 쌀농사가 잘 되어 감사하다고 쌀을 갖다 드렸고, 한 번은 할아버지네 이웃집 모내기를 하러 갔다가 만난 것이었다. 그땐 나도 몰라보고 할아버지도 몰라보셔서 한참 동안 이나 말을 하다가 서로를 알아보는 웃픈 얘기가 있었다.

 "빌려주신 땅이 계약기간이 끝나서요. 다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벌써 5년이나 지났나? 빠르기도..."

 "이번에 농지법이 바뀌면서 계약이 좀 까다로워져서요. 어려가지 서류가 필요합니다."

 "뭐라고?"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까...

 "정부에서 농지법이 바뀌면서 새로 계약할 때는 이렇게 서류들을 준비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등본 하고..."

 준비해 온 설명서를 보여드렸다.

 "아... 나는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여. 뭐가 필요하다고?"

 할아버지는 설명서를 보지도 않고 나를 쳐다보셨다.

 "할아버지 등본하고 인감증명서하고 뽑으려면 위임장을 써주셔야 해요."

 설명을 드릴 세가 없이 할아버지는 위임장을 내밀며 대신 써달라고 하셨다.

 "내가 손이 떨려가지고 잘 못쓰니까 자네가 좀 쓰게."

 나를 믿으시는 건지 아니면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는 것인지 할아버지는 덤덤하셨다. 그렇게 오래 걸릴 것만 같았던 계약서 작성은 금세 끝나버렸다. 

 "어르신. 그만 가보겠습니다. 계약서 완료되면 다시 들리겠습니다."

 "커피 한 잔 하고 가."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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