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난치병 환자라니

by 방자까
※ 주의사항
<우리 집 변기는 빨개요: 난치병 환자의 똥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작가의 지극히 사적인 '똥'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점잔 빼지 않는 직설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하니 독서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밥 먹고 서너 시간쯤 뒤면 그놈의 신호가 옵니다. 아무래도 큰 놈인 것 같네요. 오래 참을 수 없겠습니다. 서둘러 목적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휴, 목적지에 무사히 안착했습니다. 시원하게 놈을 내보냅니다. 개운한 마음으로 그놈의 흔적을 닦아내려는데, 이 새빨간 건 뭐죠?


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 평범한 어느 날의 오후였습니다. 아니, ‘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해야 정확할까요? 처음엔 큰일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살다 보면 한두 번쯤 이런 경험을 겪곤 하니까요. 너무 단단하고 딱딱해진 그놈이 연약한 항문의 피부를 찢어버리는 경험 말입니다. 똥꼬에 매운 양념을 처바른 것처럼 쓰라리고 아린 고통이 찾아오지만,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금세 회복되죠. 인체는 정말 신비합니다. 아무튼 일전에 항문 찢어짐을 경험한 적이 있던 저는 똥꼬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똥꼬가 나으면 더는 새빨간 피로 범벅된 똥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죠.


하지만 그 후에도 배변 활동을 할 때마다 변기는 새빨갛게 물들었습니다. 똥꼬가 쓰라리고 아프지도 않았으니, 아무래도 항문 찢어짐은 원인이 아닌 듯했습니다. 게다가 어느 날부터는 변기 안에 똥과 함께 누런 콧물 같은 이물질도 보였습니다. 똥 눈 변기에 얼굴을 처박고, 한참 동안 변의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숨을 꾹 참고, 눈은 잔뜩 찡그린 채로요. 제 몸에서 나온 놈들인데도 인상을 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괴로움을 무릅쓰고 자세히 살펴본 놈들은 전혀 건강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병원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똥꼬에 문제가 있으니 일단 항문 전문 병원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리하여 태어나 처음으로 대장항문외과를 찾았습니다. 병원은 깨끗하고 쾌적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대장항문외과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나 봅니다. 접수를 마치고, 가운데가 뻥 뚫린 치질 방석이 연달아 놓인 대기석에 앉았습니다. 항문외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대기석입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저를 호명하셨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의사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든 맘껏 해보려무나.’ 하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제 똥… 아니, 변에서 자꾸 피가 묻어 나와요. 그리고 누런 콧물 같은 것도 보입니다.”

“항문이 아프진 않으시고요?”

“네, 똥꼬… 아니, 항문이 아프진 않습니다.”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습관적으로 직설적인 표현들이 튀어나왔습니다. 이 나이에 똥과 똥꼬가 웬 말인가요. 부끄러움에 몸부림치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조심스럽게 손에 의료용 장갑을 착용하셨습니다.


“한 번 보시죠. 누워보실까요?”


고작 그런 단어들을 썼다고 부끄러워할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곧 처음 뵌 의사, 간호사 선생님 앞에서 엉덩이를 깔 예정이었거든요. 어찌할 도리 없이 진료실 한쪽에 놓인 침대에 새우잠 자세로 누웠습니다. 바지와 속옷을 무릎까지 내린 채로요. 다행히도 간호사 선생님이 커튼으로 저와 의사 선생님 사이를 갈라놓으셨습니다. 이제 진료실에는 한 명의 의사 선생님, 한 명의 간호사 선생님, 그리고 한 개의 엉덩이만이 존재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차가운 젤을 바른 무언가를 제 항문에 넣으셨습니다. 예고 없이 훅 들어온 그것은 제 항문 안을 푹푹 후볐습니다. 생전 처음 느끼는 기묘한 촉감에 바지를 벗고 엉덩이를 내놓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똥꼬를 공개한 직후,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아 곧바로 대화를 나눠야 한다니.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아무래도 염증성 장 질환이 의심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귓가를 스쳤지만, 저는 수치심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는데도 감정은 제멋대로 밀려왔습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대장 내시경을 해보자는 선생님의 말씀을 끝으로 허겁지겁 진료실을 빠져나왔습니다. 염증, 그게 뭐 별거겠습니까. 위염, 장염, 비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온갖 염증이 함께하는 법이죠. 일단 부끄러움이 둥둥 떠다니는 진료실을 빠져나왔으니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마음으로 대장 내시경 검사 일정을 잡았습니다.


다음 날, 대장 내시경을 마친 저는 놀랍게도 난치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우리 집 변기는 빨개요: 난치병 환자의 똥 이야기>는 이렇게 스물여섯의 어느 날, 갑자기 난치병 환자가 된 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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