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지 않는 느낌 (3)
신이시여, 분명히 ‘간단한 직장 검사'라고 하지 않으셨나이까. 저는 어찌하여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던 바로 그 검사실에 누워 있는 것입니까.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간단한 직장 검사'는 다름 아닌 직장 내시경이었습니다. 간단한 직장 검사를 한다는 말에 내심 안도했던 바보같은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잠시만요. 수면 마취를 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요? 간호사 선생님께서 엉덩이를 가린 천을 들어 올리셨습니다. 불길한 느낌이 엄습했습니다. 아무래도 곧 내시경 검사를 시작할 모양입니다. 그것도 비수면으로요.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검사가 시작됐습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대장에 공기를 주입한다네요. 쉬이이익. 아랫배에 불편한 느낌이 차오릅니다. 항문 안으로 기다란 무언가가 쑤욱 들어옵니다. 의사 선생님은 내시경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직장 이곳저곳을 살피셨습니다. 내장에 주입된 공기와 직장을 훑는 기다란 내시경 카메라가 동시다발적으로 뱃속을 자극합니다. 분명 관장을 했으니 더는 제 몸에서 나올 것이 없을 텐데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내보내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습니다. 두 주먹을 꽉 쥐고,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내시경 카메라가 움직이는 소리, 얕게 깔린 기계 소리, 간호사 선생님의 발걸음 소리, 침대를 스치는 의사 선생님의 옷자락 소리. 검사실의 부산스러운 소음에 귀를 기울이며, 극도로 활성화된 감각과 밀려오는 수치심을 애써 무시했습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 검사를 받을 때면, 저는 사람이 아닌 하나의 몸뚱이가 됩니다. 인격체로서의 특성이 모두 지워지고, 검사받는 신체라는 특성만 남은 몸뚱어리. 그러니 엉덩이를 내놓는 여러 차례의 검사에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몸과 정신을 분리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수면 내시경 검사를 할 땐 부끄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었는데, 비수면 내시경 검사는 복합적인 이 모든 감정을 생생히 느끼며 인내해야 했습니다. 검사받는 신체, 아무리 병원을 다녀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은 낯선 기분입니다.
오로지 신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순간의 꺼림칙함이 유독 낯설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잊을 수 없는 어느 날의 기억 때문일 겁니다.
2년 전,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이름난 의사 선생님에게 오래 앓던 고질병을 고치는 시술을 받았습니다. 시술실에는 시술을 집도할 교수와 열댓 명의 의사, 간호사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대학병원 특유의 바쁘고 다급한 분위기 속에서 시술이 시작됐습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양팔과 다리를 침대에 고정했습니다. 그리고는 의료진 중 한 분이 제 하의를 벗겼습니다. 시술 부위의 특성상, 속옷을 비롯한 하의를 모두 벗은 채로 시술을 받아야 했거든요. 열댓 명의 의료진은 대부분 남성. 검사받는 신체로서 이 모든 것을 견뎌야 하는 시간입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의료진이 하의를 벗기는 동안, 심전도 기계를 달기 위해 상의 역시 거의 풀어 헤쳐졌습니다. 부끄러움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와중에, 갑자기 한 의사 선생님께서 다른 선생님을 다그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지.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죄송합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거기(허벅지)를 그렇게 누르고, 이걸 써야지. 다시 해 봐."
전라의 제 몸뚱아리는 어느새 학습 교구가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를 인간과 똑같은 형상의 학습 교구라고 착각하는 모양입니다. 부분 마취로 진행하는 시술이었기에, 저는 그들의 교육 내용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의 경험 이후,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이 사라지는, 오직 신체 그 자체인 순간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물론, 모든 의사가 그날의 의료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현재 제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 선생님도 늘 불편함 없이 검사를 도와주십니다. 또 검사받는 환자를 신체가 아닌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는 것 또한 잘 압니다. 엉덩이가 뻥 뚫린 검사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날씨가 꽤 쌀쌀해졌어요. 오시는 데 춥지는 않으셨나요?’ 같은 시답잖은 이야기를 꺼내면, 아마 더 큰 수치심에 빠지고 말 겁니다.
직장 내시경 검사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직장에 염증이 조금 더 보이긴 하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익숙해지지 않는 그 느낌을 극복하게 해주는 감사한 결과였습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어가는 존재인 인간으로서, 죽는 그 날까지 끝없이 병원에 드나들어야 할 운명으로서, 이 생소한 기분에 적응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겠습니다. 앞으로도 1년에 한 번은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할 텐데, 저는 과연 이 낯섦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