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궁내정(내가 궁금해서 내가 정리했다)
절대 존엄의 존재였던 왕의 이름은 함부로 말할 수도 쓸 수도 없기에 백성들의 말 사용을 배려해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를 활용해 외자로 이름을 지었다.
여기서 문제, 이단(旦)은 어떤 왕의 이름일까?
바로 태조 이성계의 휘(諱), 진짜 이름이다. 1335년 고려 태생인 이성계가 1392년 조선을 개국한 왕이 되면서 이름을 '단'으로 바꾸었다. 이성계의 차남이자 훗날 조선의 2대 임금이 되는 이방과 역시 이름을 경(曔)으로 바꾸었다. (생전에 한 것인지 사후에 한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25대 철종의 초명은 원범이었고, 휘는 변(昪)이었으며, 26대 고종의 초명은 명복, 휘는 희(㷩)였다. 원래 왕의 이름은 세자 책봉 때 정해진다고 한다. 세자는 특별한 변고(폐위)가 없으면 다음 임금이 될 자리인 만큼 외자 이름으로 지어졌다. 철종이나 고종은 왕족이었으나 왕위 계승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선왕이 후사가 없어 왕이 된 특별한 사례들이다. 유교를 중시했던 조선 왕조지만 의외로 왕위 계승을 장자가 한 사례가 많지 않다. 일곱 분의 왕(문종, 단종, 연산군, 현종, 숙종, 경종, 순종)만 이에 해당한다. (인종은 중종의 넷째 아들이나 적장자였음)
왕위에 올랐음에도 이름을 바꾸지 않은 왕도 있다. 3대 태종이 된 이방원(芳遠)과 6대 단종이 된 이홍위(弘暐) 두 분이다. 태종은 고려 출신에 재위 기간이 18년이나 되고, 단종 역시 너무 어려 제대로 된 왕권을 행사하지 못했으나 재위 기간은 3년이나 되었다. 정종이 약 2년 2개월, 예종(이황)이 약 1년 2개월, 인종(이호)이 약 8개월 간 왕위에 올랐던 것에 비하면 짧은 기간도 아니었다. 조선 개국 초라는 특수한 상황이라지만 이미 선대왕이 이름을 바꾼 사례도 있는데 태종이 이름을 바꾸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정작 태종은 자식들 이름은 전부 외자로 지었다. 폐세자가 된 양녕대군의 이름은 제(禔), 효령대군은 보(補), 4대 세종의 이름은 도(祹)이고 다른 왕자들 이름도 모두 외자였다. 7살에 왕세손에, 9살에 왕세자에 책봉된 단종의 경우도 매우 이례적이다. 단종은 할아버지 세종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세종은 장남 이향(문종)이 병약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았고 그렇기에 세손을 특별히 아끼고 걱정했다. 그럼에도 세손, 세자 책봉 시 이름을 외자로 짓지 않은 것을 보면 세종이나 문종 역시 안평대군이나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을 의식했던 것일까?
여기서 잠깐 이름과 관련한 '이름(명칭)'을 짚고 넘어가 보자.
☞ 아명(兒名) : 어릴 때 정식 이름을 짓기 전에 부모가 자식을 부르는 친근한 이름, 세종대왕 아명이 막동(莫同)
☞ 초명(初名) : 처음 이름
☞ 휘(諱) : 태어날 때 받은 진짜 이름
☞ 자(字) : 성년이 되는 관례 때 받는 이름인 관명과 함께 스스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짓는 새로운 이름
☞ 호(號) : 본명이나 자 이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 (별칭, 필명, 별호, 아호)
역대 조선 왕 중에 이름이 가장 유명한 임금 두 분은 세종(이도)과 정조(이산) 두 분이 아닐까 싶다. 모두 TV 드라마 덕분이다. 국민학교 때 툭 치기만 해도 술술 외웠던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이 왕의 이름(본명)이 아니라 묘호(廟號)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아마도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였던 것 같다. 도대체 태조가 한 명이 아니라니! 충격이었다. 최근에 몇몇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영조, 정조, 순조' 세 분의 묘호가 당시에는 '영종, 정종, 순종'이었다는 사실. 영종이 영조로 바뀐 때는 고종 26년, 정종이 정조로 바뀐 때는 광무 3년 그리고 순종이 순조로 바뀐 때는 철종 8년 때였다. 조선 후기로 가면 '덕'이 있는 왕에게는 '종(宗)'을, 공이 있는 왕에게는 '조(祖)'의 묘호를 붙였다. '종'보다 '조'를 더 높은 것으로 여겼다. 선왕의 공을 높여 당대 왕권을 강화하고 위태로운 종묘·사직을 바로잡고픈 조선 후기(말기) 현실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왕조는 얼마 가지 않아 막을 내렸지만 말이다. 그런가 하면 2대 왕인 경종은 숙종 때(사후 약 250년 후)에 와서야 경종이라는 묘호를 얻었고, 조선의 왕중 유일하게 왕릉이 북한에 있다. 대부분 왕릉이 서울과 인근(구리, 파주, 남양주 등) 지역에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왕릉을 한 곳으로 삼지 않고 다양한 지역에 흩어 모신 것도 궁금하다. 후대에 도굴이나 왕릉 훼손을 염려한 탓일까? 보호와 관리 차원이라면 한 장소에 있어야 더 수월하고 효율적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알면 알수록 궁금증이 늘어난다.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조선 시대에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고대사나 근현대사에 더 관심이 많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틈틈이 책을 읽다가 궁금한 게 더 많아졌다. 조선왕조실록 관련 책도 일부러 찾아 읽고 역사책도 더 많이 찾아보았다. 아, 학교 다닐 때 이렇게 호기심 많은 학생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선 시대를 쭉 훑고 나니 고려 시대도 궁금해졌다. 고려 시대 왕의 이름은 한결같이 모두, 예외 없이 외자였다.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