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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Feb 17. 2020

겨울에는 눈!

눈이 내리면 좋은 이유가 뭘까?

  올 겨울은 온전히 쌓이는 눈 한번 보지 못하고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그냥 가기 섭섭했던지 때 늦은 눈이 이틀째 내린다. 2월에 내린 눈이 이렇게나 반갑다. 


  눈이라면 지겨울 만도 한데 지겹지가 않다. 산 넘어 산이 있고, 그 산 넘어 또 산이 있던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군 생활을 했던 덕분에 평생 볼 눈은 이미 그 시절에 다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이 나이가 되어도 내리는 눈을 보면 설레고 아이처럼, 강아지처럼 눈 속을 뛰어다니고 싶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눈이 1.5미터는 왔을 것이다. 밤이면 일직 사관이 병사들의 잠을 깨웠다. 눈의 무게 때문에 막사가 무너질지도 모르니 그 한밤 중에 지붕의 눈을 치우라고 명령했다. 낭만이나 운치 같은 것에 내어 줄 자리는 없었다. 살고 싶으면 눈을 치워야 했다. 줄다리기 시합 때나 사용하던 두꺼운 줄을 지붕 위로 던져 양쪽에서 잡아당기며 막사의 눈을 치웠다. 가벼운 막내들은 지붕에 직접 올라가 눈을 치웠다. 연병장에 쌓인 눈은 너무 많아 병사들이 치울 수가 없었다. 사단에 몇 대 밖에 없는 제설장비가 민통선 안에 있는 우리 부대까지 오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막사와 막사 간에 간신히 통로만 만들었다. 눈 사이로 난 길, 정확히는 눈의 벽으로 된 미로 같은 길을 걷는 것은 그래도 재미있었다. 훈련도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눈을 치우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다. 보급이 중단되면 굶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눈을 치우고 있는데 중대장이 나를 불렀다. 내일이 전역일이란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전역일이라니. 전역을 한 달 앞두고는 시간이 지독하게도 천천히 가더니 고마운 눈 덕분에 말년의 시간이 화살처럼 빨리 지나갔다. 그렇게도 독한 눈이었지만 보고 또 봐도 좋았다. 전생에 개가 아니었나 잠시 생각해 본 것도 이때였다.  


  복학을 하고 4월에 경북 안동으로 답사를 갔다. 부석사를 견학하고 내려오는 길에 함박눈이 내렸다. 4월인데도 눈이 내리다니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설경을 보았다. 그 후로 4월이면 빠짐없이 부석사를 찾아갔다. 그 날 이후로 눈은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온통 새하얀 부석사가 있었다. 아내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하던 부석사는 이제 제주에 밀려 잘 가지 않지만 올 해는 꼭 한번 다녀올 생각이다. 생각지도 않은 눈이 내려준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부석사가 주는 고요한 울림만으로도 노정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니 사람들은 왜 눈이 내리는 것을 좋아할까? 물론 길과 도로가 지저분해진다고, 차가 더러워진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눈을 좋아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왜일까, 왜일까? 그것은 눈을 잃어버린 먼 미래의 후손들이 소중한 것을 놓치지 말라고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는 아닐까? 과학과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과거로 갈 수 없는 코스모스의 법칙 때문에 우리가 논리적으로 이해는 할 수 없지만 본능적으로, 직관적으로 눈을 좋아하게 만들어 그것을 지켜내게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헛헛한 상상일 뿐이다. 


  이제 겨울에 눈 구경하는 것이 예전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우리나라의 기후도 사실상은 여름과 겨울 밖에는 없다는 말이 그저 농담처럼만 들리지는 않는다. 편리함 때문에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다면 아직 시간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충분한 시간은 아닐지도 모른다. 지구에게 마지막 골든타임은 지금 이 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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