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가 가져온 선물
지금은 깨어 있는 시간 중 대부분을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준과 큐도 한때는 사이좋은 형제였다. 나 조차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믿기 어렵지만 분명히 사실이기는 하다. 어린 준은 자신보다 훨씬 어린 큐에게 친절하고 자상했다. 아마도 이런 사이가 틀어진 것은 큐가 자신만의 확고한 의견이 생기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둘의 평화는 길지 않았지만 아름다웠고 보기에도 참 좋았다.
준은 태어나면서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양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하지만 나는 준에게 평생을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는 동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라는 입장이었지만 결국 내 생각에 동의했고 우리는 큐를 낳았다. 큐가 태어날 즈음 준에게 동생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누구에게 선가 아이에게 동생이 생기는 일은 엄청난 스트레스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엄마가 보이지 않더니 며칠 만에 생전 처음 보는 아기를 불쑥 안고서 집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면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4살(36개월) 준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마침 다니던 회사의 보스(프랑스 사람이었다)가 둘째 아이를 낳았다. 첫째 아이와의 나이 차이가 우리 집 상황과 같았다. 내 고민을 털어놓으니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다.
그 노하우란 것이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꽤 그럴싸해 보였다. 방법도 아주 간단했다. 두 아이가 처음 만나는 순간에 둘째 아이(물론 부모)가 준비한 선물을 첫째 아이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전달할 수는 없으니 우리는 큐 옆에 가지런히 올려 둔 선물(신발)을 준이 직접 가져가게 했다. 뜻밖에 큐로부터 선물을 받은 준은 기뻐했다. 아마도 이 선물 덕분에 조금 더 자연스럽게 동생을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다. 물론 장난감 같은 선물이 당장은 좋겠지만 아이들의 특성상 금방 장난감 통으로 들어갈 선물보다는 매일 신고 다니는 신발이 좋을 것 같았다. 다행히 준도 동생이 선물해 준 신발을 더 좋아했다.
신발보다는 준의 착한 천성 때문이겠지만 우리의 염려와는 다르게 준은 자연스럽게 동생을 맞이했다. 큐와 잘 놀아 주었고, 큐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면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아내가 바쁠 때는 큐에게 분유를 먹이기도 했고, 글은 읽지 못하지만 책을 읽어 주기도 했다. 아이들 책은 글밥이 많지 않은 덕에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워서 읽어 준 것이다. (나에게도 가끔 읽어 주었는데 페이지마다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어 혹시 준이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때 한 적도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큐가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고집)이 생기기 전까지는 우리 집도 참 평화로웠다.
이제 14살과 11살이 된 준과 큐에게는 신발보다 더 강력하게 두 사람을 화합과 평화의 場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안타깝게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컴퓨터 게임이다. 게임을 할 때면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협력하고, 양보하며 심지어 매우 조용하기까지 하다. 일주일에 오직 주말에만, 그것도 주중에 자기 할 일을 모두 끝내 놓아야만 가능한 게임은 두 사람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10년 전의 '의좋은 형제'의 모습으로 돌려놓는다. 역설적이게도 아내와 내가 가장 마뜩해하지 않는 아이들의 게임 시간이 우리 가정이 가장 평화로운 순간인 것이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