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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Oct 23. 2021

누구에게나 대나무 숲이 필요하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독서에세이 

〈갯마을 차차차〉 드라마를 몰아보기로 시청했다. 


강원도 공진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두식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줄거리가 인상 깊어 종영까지 연속 시청을 했다. 서울대 출신, 훤칠한 외모, 없는 자격증이 없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홍두식은 공진 마을 곳곳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돌아가신 엄마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공진을 우연히 찾아온 혜진과 두식은 복잡한 우연이 반복되다 연인이 되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돌아가신 혜진 역시 엄마를 잃은 슬픔과 재혼한 아버지로 인한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성격이 급진적인 혜진은 자신의 상처를 두식에게 나눈 것처럼 두식도 자신에게 서울에서의 비밀스러운 5년의 세월을 이야기해 주길 기대했으나 두식은 입을 닫고 미안하다고 하며 한참 동안 뒷걸음친다. 두식과의 사이에 벽을 마주하며 속상함에 우는 혜진에게 횟집 사장 여화정이 다독인다.


누군가한테는 말하기 쉬운 게 

어떤 사람한테는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고 참는 것만 

배운 애라 지 속 터놓는 법을 몰라요.

힘들다 아프다 이런 얘길 들어줄 사람이

오래 없기도 했고...

나는 선생님이 두식이 대나무 숲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두식은 일찍 부모를 잃었다.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는데 두식이 축구하러 갔다 온 사이 할아버지도 갑자기 돌아가셨다. 대학에서 만난 친형처럼 의지했던 형이 자신을 대신해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자신만 살아남았다. 두식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라는 불행을 반복하면서 자신에 대한 공식을 세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 모두 일찍 죽었다. 

모두 나 때문에 사랑했던 사람들이 죽었다 = 나는 평생 결코 행복해질 자격이 없다.     


두식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것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형이 교통사고로 죽은 것도 모두 자신의 탓이라 자책하며 자신을 마음 감옥에 가두고 살아간다. 두식은 잠을 자면서 늘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피가 잔뜩 묻은 손이 자신의 어깨를 잡는다.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은 금방 죽게 된다는 트라우마의 감옥에서 자신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지적에 시달린다. 


혜진을 사랑하게 될수록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두식의 행동은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혜진을 향한 배려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었다. 과거를 지워버리고 싶고 잊고 싶지만, 두식은 죄책감과 트라우마의 감옥에 머물러 있다. 서울에서 공진으로 공간은 옮겨왔으나 마음은 여전히 매일 악몽에 시달린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자신의 트라우마를 털어놓지 못한다. 사랑하게 된 혜진에게도 상처를 이야기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식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혜진이 여화정의 조언을 듣고 두식에게 천천히 이야기해도 된다고, 기다리겠다고 화해를 청한다. 두식이 이야기할 준비가 될 때까지 혜진은 기다려 준다. 어느 날, 드디어 두식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서울에서 자살 시도를 하려 했던 5년의 시간을 혜진에게 이야기하며 눈물을 쏟는다. 두식에게 혜진이 대나무 숲이 된 것이다.



      

마음 감옥에 자신을 가두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두식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과거의 불행으로 잘못된 공식을 만들어 자신을 정의하는 모습에 눈물이 나왔다.

“나 때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나 때문에 교통사고로 형이 죽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죽었어.”     


어린 시절 나도 내가 반복해 경험하는 불행으로 잘못된 공식을 세웠다. 20년 동안 함께 한집에서 살았으나 따뜻한 대화 한번 해본 적 없는 부모님과의 동거는 내가 환영받는 인생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나를 낳아준 부모에게도 환대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애정결핍은 나에게도 이런 공식을 안겨주었다.     


나 = 부모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아이

나 = 세상에 아무런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존재

나 = 앞으로도 영원히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인생   

   

잘못된 공식은 마음 감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두식이 자신을 마음 감옥에 가둔 것처럼 나 역시 나 자신을 오랜 시간 마음 감옥에 가두고 높은 성을 쌓고 살아왔었다. 누구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누구도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가시를 잔뜩 세웠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고, 앞으로의 인생도 행복할 수 없다 생각했다.     

 

다행스럽게 홀로 된 두식에게는 공진의 따뜻한 이웃이 있었다. 서울에서 갑자기 공진에 영혼 없는 표정으로 내려와 집에 박혀 있는 두식을 길고양이처럼 매일 들여다보고 무슨 일이냐 물어보지 않고 밥을 먹이는 고마운 이웃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껏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상처를 털어놓을 수 있는 대나무 숲이 되어 준 고마운 혜진을 만났다.     


“시간은 우리를 치유하지 않는다.

우리가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가 우리를 치유한다.

우리가 스스로 책임지기로 선택할 때,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기로 선택할 때,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상처를 드러내고 

과거나 슬픔을 떠나보내기로 선택할 때, 

치유는 가능하다.”


《에디트 에바 에거,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상처와 트라우마를 드러내고 떠나보내기로 선택하는 순간, 치유가 시작됨을 두식을 통해 보여주는 드라마였다. 잘못된 공식을 무너뜨리고, 마음 감옥의 문을 열고 나오는 두식의 결말에 뭉클한 감동이 가득했다. 두식에게 대나무 숲이 되어준 혜진과의 해피엔딩에 너무 다행스럽고 감사했다.      


마음 감옥은 너무 미끄럽고 깊다.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음을 경험했다. 잘못된 공식을 깨뜨리는 것도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내 마음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은 정확하고 예리하게 나의 아킬레스건을 지적했고, 쉴 새 없는 공격에 피할 곳이 없었다. 항상 마음이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었다. 밤마다 울며 잠이 들곤 했다.       


가장 큰 감옥은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마음 감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누군가 대나무 숲이 되어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두식에게 혜진이 대나무 숲이 되어준 것처럼, 누군가에게 나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배설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혜진이처럼 그동안 모래주머니를 차고 살아오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이야기해 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너의 잘못이 아니고 너의 탓이 아니라고 토닥여주는 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살아오면서 나의 대나무 숲은 누구였을까?    

 

두식이처럼 참는 것만 배운 나는 친구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나의 상처를  이야기하지 못했다. 프라이버시가 너무 강한 성격이어서 더욱 그랬다. 사람에게 상처를 이야기할 수 없었기에 혼자 책을 읽으며 활자들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매일 책을 읽으며 내 우울하고 상한 마음을 토로했고, 책을 읽으며 혼자 많이 울었다. 결혼 전까지 매일 일기장에 헤어 나올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사람에게 말이 아닌 활자에게 토로했다.    

  

혜진이 두식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이야기해준 것처럼 활자들이 나에게 괜찮다고 괜찮다고 쓰다듬어 주었다. ‘나=쓰레기’라는 내가 세운 공식을 잘못된 공식이라 알려주고 ‘나=온 세상의 복덩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선물로 안겨준 것도 역시 활자들이었다. 책 속에서 만난 활자들과 일기장에 적었던 활자들이 사람 대신 나의 대나무 숲이 되어 준 것이다. 대나무 숲 덕분에 내 주머니 안에 열쇠로 마음 감옥의 문을 당당히 열고 나올 수 있었다.     




“가장 큰 감옥은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주머니 안에 이미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 열쇠는 기꺼이 자신의 삶에 

절대적인 책임을 지는 것,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으로 

판정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하고 

자신의 결백을 되찾는 것,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불완전한, 

그러면서도 온전한 인간 존재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다.” 


《에디트 에바 에거,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헝가리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발레리나를 꿈꾸던 열여섯 살 에디트 에바 에거는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부모를 죽인 나치 장교 앞에서 춤을 춰야 했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견뎌내고 해방되었을 때, 그녀는 시체더미에서 겨우 구조되었다.      


역사적 사건의 생존자라는 죄책감으로 과거로부터 숨고자 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을 만나 상처를 뚫고 나와 심리치료사가 되었다. 그녀에게 빅터 프랭클이 대나무 숲이 되어준 것이다. 덕분에 그녀는 퇴역 군인과 신체적 정신적 트라우마로 마음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이 마음 감옥을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로 살아간다.

      





“당신은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없다.

당신은 당신이 한 일과 당신에게 행해진 일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은 현재 어떻게 살지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은 마음 감옥에서 자유로워지기로 선택할 수 있다.”


《에디트 에바 에거,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진실과 이야기를 억지로 숨길 때 비밀들이 트라우마가 되고 자체로 감옥이 된다. 유감이지만 나쁜 일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다. 지나간 과거도 우리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자유는 용기를 모아 벽돌 하나씩 하나씩 마음 감옥을 해체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다면 혼자만의 글쓰기를 통해 깊은 상처의 암반을 드러내고 표현함으로 마음 감옥을 활짝 여는 열쇠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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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감옥을 여는 열쇠는 이미 우리 마음 주머니 안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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