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 마
슬픈 날들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들 오리니….
출근길 버스에서 가곡이 흘러나왔다. 아침 출근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정혜는 자신도 모르게 익숙한 노랫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가사를 헤아리다 보니 푸시킨의 시였다. 푸시킨의 시가 노래로도 있었구나. 꾹꾹 눌러 정성스레 부르는 성악가 목소리가 어느새 묘한 위안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 출근했지?
정혜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메신저가 울렸다. 소희였다.
- 완전 빅뉴스. 상수 씨 왔어?
아니 아직.
- 상수 씨 공모전 낸 거 알고 있었어? 긴급 인사 공고 뜬대. 방금 인사팀 언니한테 들음.
- 일등이래. 기획 1 팀장 발령.
잘됐다고 쓰려던 정혜의 손가락이 멈췄다. 기획 1 팀장.
정혜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수는 자신이 일을 가르친 부사수였다. 자신보다 연차도 직급도 낮았다. 추진해 온 업무량은 비교할 수도 없었다. 팀장이라고? 상수는 잔머리가 좋았다. 상황 판단도 빨랐다. 정혜는 상수를 보면서 상황 파악할 시간에 일을 성실하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다가 이내 자신이 오 차장을 닮아가는구나 싶어 생각을 털어냈다. 얼마 전 상수는 정혜에게 공모전에 낼 거냐고 물어봤다. 나는 그 전투에 참전하지 않겠소라는 정혜의 선언 아닌 선언은 그날 하루 종일 기획 1 팀원들의 웃음거리로 회자되었다.
-오 차장님은?
소희는 오 차장님의 행방을 정혜에게 묻고 있었다. 정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오 차장은 며칠 전 전화 통화에도 자신의 거취에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저 힘을 키우라고만 했을 뿐..
글쎄.
- 정혜 너도 모르는 거야? 진짜 안 오시는 건 가봐.
진짜 안 오시는 건가 봐. 소희의 말이 정혜의 머리를 울렸다.
띠링~ 사내 메신저가 울렸다. 긴급 인사 공고였다.
* 인사 발령 공고. 직급 과장, 직책 기획 1 팀장, 민상수.
* 발령 내용. 공모전 당선에 의한 승진
정혜는 역시나 인사팀에서 흘러나온 소식은 진짜였구나 생각했다. 미리 알아서 다행인 건가? 아침에 소희에게 들었을 때보다 충격은 덜했다. 정혜의 개인 메신저가 소란스러워졌다. 입사 동기부터 그간 친하게 지냈던 회사 동료들은 하나같이 정혜에게 어떡하냐며 걱정을 쏟아냈다. 그리고 모두 오 차장의 안부를 물었다. 정혜는 정성스럽게 글쎄요라고 썼다.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곧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하리.
아침에 들었던 노래가 생각났다. 정혜는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프지만 모든 것은 지나갈 테니 참고 견디라고 노래한 이 시인을 떠올렸다. 그가 시와는 달리 실제로 소문에 휩쓸려 참지 못하고 결투를 벌이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저 멀리 박수 소리가 들렸다.
정혜는 자신도 가봐야 할까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사무실에는 정혜 혼자뿐이었다. 나가려다 말고 정혜는 창문을 열었다. 숨을 쉬고 싶었다. 고개를 돌리니 손바닥만 하늘이 보였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그저 파랬다. 눈이 부시게 파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