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의 시가가슴으로 들어왔듯이, 6년 전 그녀가 보낸 "설탕에 안 가면 안 될까요?"라는 카톡도 내게 그랬다.
설탕에 안 가면 안 될까요?
내가 아직 시드니에 살고 있을 때 친구는 1회용 종이 팩에 든 "번다버그 슈거"를 자기의 커피 잔 앞에 배치한 후, 그 인증숏을 찍어서 이 물음과 함께 보내왔다.
설탕에 안 가면 안 될까요?
그녀는내가 이사 올 이곳의명물, "번다버그 슈거"를"설탕"이라는한 단어로 축약해 놓았다.기발한 이 문구에난 혼자 살짝 질투심을 느꼈었다.짧은 한 마디에 지혜가 돋보이고 찐정이 흠씬 묻어있었다.이사 오고 6년이 지났는데도 쇼킹했던 이 문구가 자주 기억된다.
"번다버그 슈거", 그녀가 말한 "설탕"은 호주 전국의 카페와 슈퍼마켓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번다버그 설탕은 사탕수수 대궁의 즙을 짜서 가공된다.
산이 없는 평원지대의 이곳에는 슈거 케인이라 불리는 사탕수수 밭이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곳 겨울이 시작되는 어느 날 저녁에 관광버스를 타고 가서 사탕수수 수확하는 모습을소상히 본 적이 있는데, 벼 수확하는이치와똑같았다. 다만 사탕수수의 큰 키에 기계가 맞춰줘 있고, 벼를 수확하는 탈곡기는 벼의 크기에 알맞으니 서로의 크기만 다르다. 키 작은 사람과 키 큰사람의 차이와 같다.
벼가 가마니에 담겨 방앗간으로 운반되듯이, 사탕수수의 대궁은 특수 증기 기관차를 이용하여 번다버그 밀이라는 설탕공장으로 운반된다. 기차는 겨울철 수확 성수기 때마다 기적을 울리며 케인 레일웨이 Cane Railway라는 철로 위를 길고 느리게 달린다. 아침저녁으로 울리는 저 뚜뚜 소리는 사탕수수의 수확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음이다.
어느날 저 대궁이 실린 트레일러가 몇개인지 세어보니 자그마치78량이나 되었다. 추수성수기는 5월부터 8월까지다. 길이가 균일하게 잘라진 대궁을 싣고 기적을 울리며 철로를 달린다.
국내선 비행기에서 찍은 사탕수수밭 상공.
수확하여 설탕공장으로 운반되는 사탕수수 대궁.이 속에서 설탕이 나온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1882년부터 가동되었다는 번다버그 밀이라 불리는 설탕공장, 뭉개 흰구름은 수증기입니다.^^
몇 년 전 이 설탕공장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이 공장 주변을 며칠 동안 어슬렁거렸는데, 어릴 적 설날 대목 때 맡았던 달큼한 내음이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조청 달이던내 유년의 향수로다가와눈뿌리가 불현듯 저린 적이 있다.그건 어릴 적 맡던 엄마의 음식, 유가 강정을 만들던 냄새였다.그때부터 이 공장은 내게 특별한 곳이 되었다.
200여 명의 직원이 24시간 풀가동한다는 140년 된 이 공장은, 굴뚝으로뭉게구름처럼 하얗게 피어오르는 수증기의 양으로수수의 대궁이 삶기는 노동의 부피를, 수증기의 방향으로 그날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가늠된다. 날마다 시마다 달리 피어나는 수증기를 보는 일은 언제 봐도 흥미로운나의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타운으로나갈 때 꼭 지나치는 이 낡은 건물에서 내 어린 날 맡았던 달큼한엄마의 냄새를느낀다. 집에서 차로 2분 만에 닿는 이곳 허름한공장에서사탕수수를 삶아세상의 단물을 대량으로생산해낸다는 "번다버그 슈거" 팩토리가 난 괜히 신기하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