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인 나는 여섯 살 적에색연필로 직접 그린그림 한 점을어른들에게 보여주면서, 이 그림이 무섭지 않은지 묻는다. 어른들은 모자가 뭐 무섭냐고 대답한다.하지만 그건 모자가 아니었음을, 이제 아는 어른은 다 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가 그만큼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아이는 보아구렁이가 코끼리를 씹지도 않고 삼킨 이야기와 여섯 달 동안 잠자면서 코끼리를 삭히고 있다는 걸어른들한테 설명해 준다.그러나 어른은 이해를 못 한다.어른들은 익히는 그런 건 제쳐두고 지리, 역사, 수학, 문법을 공부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다른 그림, 코끼리가 그 모자 속에 들어있는 모습, 을 더 확실하게 그려서 보여준다. 그러다 아무것도 스스로 이해 못 하는 어른들한테 설명하는 일이 어려워서, 여섯 살 아이는 자신이 꾸던 멋진 꿈, 그림 그리는 일을 포기한다. 대신 비행기 조종사 일을 익히게 된다.
현악기 '기타'의 영어발음은 한국어와 유사하다.
우리말과 비슷한 발음으로 동일한 악기를 지칭하는 기타, 그영어어감이 난생경했다. 동서양 사이의언어의 거리가 가깝고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현악기 기타를 영어로도 기타라 하였다. 그러니 처음 접한 내게 그건 참신한 긍정의 마인드로 다가왔다.
기타는 발음이 같은 [기타]이긴 하나억양이 서로 다르다. 우리말은기타, 영어는 기타이다.우린 악센트가 앞에, 그들은 뒤에 붙는다. 서울말과 부산말의 간극 같다.경계가 없는 듯 있는 것이, 느슨해져서 음역이 간당간당하게 틀릴 것 같은 기타 줄 같기도했다.
그런 영어발음을 입안에서 굴려내는 데, 한동안 애를 먹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랬다. 그건 엄마가 머더, 아빠가 파더라는 차이와 차원이 달랐다.
반평생을 기타로 살다가 별안간 기타로 바꾸는 덴 시간이 꽤 걸렸다. 그땐 나 자신도 의아했다. 이 두 음절짜리 짧은 단어가 왜,내 입안으로 단 한 번에 착 감겨오지 못할까, 하고.
그들에게 우리말로 기타를 발음하면 못 알아들었다. 그게 당연했으나 가끔 허탈하기도 했다.
이 나라에서 기타, 그단어를 써먹기 위하여몇 개월동안 발음을 익혀야 했다.혀로 엑센트 하나 옮기는 것보다, 육중한 바윗돌하나 옮기는 일이더 쉬울 때가 있음을 실감했다.
익히는 일 앞에선 누구나 어린아이가 된다.
* 기타 guitar, 미국[gitάːr], 영국[gitάːr] ; a stringed instrument usually having six strings.
이처럼, 어른들도 배움 앞에서 큰소리 못 친다. 무언가를 익히는 데는 시간과 열심만이 필수조건이다. 세 살 반짜리 재윤이도 무언가를 경험하며 익히는 중이다.
어느 날 재윤이의 이야기를 하며 우린 많이 웃었다. 어른과 아가의 마인드가 달라서였을까. 재윤이의 이야기는 내게 《어린 왕자》 서두의 그림 같기도, 잉글리시와 콩글리시 사이의 간극 있는 기타의 발음 같기도 했다. 팩트를 비껴간 아가의 동상이몽이 귀엽기만 했다.
나의 외손주 재영이와 재윤이는 같은 유치원을 다닌다. 며칠 전, 다섯살 된 형아 재영이가 열이 나서 3일 동안 유치원을 쉬었다. 그때 동생 재윤이는 유치원 문 앞에서 자기도 형아하고 집에서 같이 놀겠다며 엄청 울었다고 한다. 평소엔 안 그런 것 같아도, 형아한테 의지를 많이 했었나 보다.
그 후, 어느 날 재윤이 엄마, 같은 유치원생 엄마로부터 한통의 카톡을 받는다. 재영이가 수영장에서 이마를 다쳤다는데 괜찮냐는 안부였다.
재윤이 부모가 재영이 이마를 짚으면서 열체크하는 걸, 우리 세 살 반짜리 재윤이가 인지할연령이 아직 안되었던 거다. 수영장에 갔다 온 후부터 형아가 아팠으니 우리 꼬맹이 재윤이가 유치원 친구한테 지 맘대로 동화 하나지어 읊은 거다.하지만 재윤이에겐 그것이 팩트였다. 본 대로 들은 대로 아는 만큼 말한 거다.
재윤이의 이 이야기를 들으며 웃다가 위의 《어린 왕자》 이야기와 나의 기타에 얽힌 사연이마치 리트머스지처럼 내 안에서 뽀로로 딸려 나왔다.
세 살 반밖에 안된 재윤이가 《어린 왕자》의 모자만큼이라도, 스스로 익히고 표현했으니 장하고 장하다. 우리를 웃겨주었으니 나의 외손주 멋져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