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일을 하러 왔다는젊은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사실 난 좀 뜨악했다. 알만 한 사람이 왜 이런 우문을 할까, 하고.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단 한 번도, 균일하지 않는데, 바다가 다 같을 수가 있을까, 하고.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또,이해된다. 부산은 서울하고 달라요?로, 물었다면 질문거리도,대답거리도 명징하다. 부산은 바다에 인접해 있고, 지하철이 서울보다 단출하고, 인구수가 약 3배 적고, 서울은 표준어, 부산은 고유의 사투리를 쓴다는.
사는 일에 매몰된 듯 분주하던, 내 젊음의 시간에도 바다의 얼굴을 자세하게 뜯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우문이라 생각되었던 그의 질문이 그걸 깨우쳐 주었다.내 젊은 시절의 시간도 1인 3역을 해내느라 허벌나게 바빴다. 내게 바다는 그저 아이들하고 가야 하던 물놀이장소였다. 바닷물만 있으면 되었다. 부산이나 서울 또한,평소 못 가보던 롯데몰에서 아이스링크를,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KTX를 아이와 타야 했던,젊은 시절 내겐그냥 가야 하던 장소에 불과했다.
나이 든 요즘은 남는 게 시간이니 바다를 눈코입으로 나누어서 얼마든지 뜯어보고 조립할 수 있다. 내가 근래에 보는 바다는,부산과 서울의 얼굴처럼다 다르다.쌍둥이가 아닌 이상 각자 얼굴이 다르듯, 바다들도 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꼭 가봐야 할 바다를 알려줄래요?
멀리집을 떠나 2주 동안 일을 하러 왔으니 주말에는숙소에서 푹 쉬고 싶다고 했단다. 그래도 딸은 보고 간다 했으니, 난 딸의 상사였던 그를 초대하여 육해공군으로 한 상 가득 차렸다. 9년 전 딸이 여러모로 불안정했을 인턴시절, 같은 약국에서 부부약사로 일했던 그들은 아직까지 딸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랬던 그들 중, 그녀의 허즈번드, 그가 이 먼 곳까지 왔으니, 난 그당시의 그들이 딸에게 해주었던 고마움이 되살아나서반가웠다. 숙소로 돌아갈 때는 싫다고 하는 걸 억지로, 이것저것 챙겨서 들려 보냈다. 초등학생딸 둘 아빠, 젊은 그가 계면쩍게 웃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이곳 바다의 세 얼굴을 알려주었다. 하나는 바가라비치, 또 하나는 엘리엇 헤드비치, 또, 또 하나는 몬레포비치다. 엄마, 아빠, 그리고 딸이나 아들처럼, 각기 다른 얼굴을 한 아름다운 바다다. 이쁜 두 딸아빠, 그가내 설명에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바다를 꼭 들러서 갈 기세로 수긍하며 들었다. 며칠 후, 난 좀 궁금해졌다. 그래서 딸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과연, P는, 그날, 바다에 갔을까?
딸은 대뜸, 안 갔다에 100% 건다. 내가 답한다. 맞아. 그 멀리서, 난생처음 와 본 낯선 데 와서, 적응하고 일하느라 얼마나 피곤했겠어, 그치. 숙소에서 이불 둘둘 말아 꾹 끌어안고 푹 쉬었을 것 같다. 딸내미들이랑 언니랑 화상통화도 했을 테고..., 하며 우린 소리 내어후훗 웃었다. 일과 육아와 공부로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던 나의 젊음의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