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수록 새끼를 치는 게 시간이다. 그는 늘 시간을 지니고 살았다. 어제 쓴 시간을오늘도 쓰고내일도 썼다. 봄 되면 꽃가루를 뜨는 시간으로 시작했다. 배나무에 꽃망울 맺는 시기는 사월 초순경이었다. 꽃피는 사월이 메마른 계절이길 바랐다. 장십랑 배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 맺은 가지를 열 서너 트랙터 꺾어와샛노란 꽃가루를 채취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오지랖 넓은 그는, 만 육천 평그의 과수원과, 다정한 이웃의 자잘한 과수원,그리고 자기 고향의 형님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하여, 꽃가루를 넉넉히 채취했다.
배꽃을 하나하나 따그늘에엷게 널어꽃의 수분기를 조금 걷어내어야 했다.남의 손을 빌려, 아니 고양이 손까지 얻어서 단숨에,꽃의 수술을 채취하여야 했다. 그의 마음은 꽃에 동화되어 있었다. 꽃을 피우는 꽃나무인 양, 신고배꽃이 피어나던 찰나, 매번 봄의 산고를 겪었었다. 그때마다 그는 밥알을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다. 시간에 경색되어 있어 목으로 뭔가넘어갈 틈이 없었다. 꽃샘바람이 불어 기온이 급강하할 땐 밤새도록, 아랫마을 정미소에서 왕겨를 트랙터에 실어와 배나무 둥치에 덮어주었었다. 과수원 군데군데 웅신하게 왕겨불을 피워놓았었다. 그리고 낮엔 온도를 맞추어 둔 꽃가루 채취기의 문을 열고 샛노란 꽃가루를 받았었다. 먼지처럼 날리던 꽃가루로 인해 집안이 온통 샛노랗게 변해있곤 했었다.
정자나 난자처럼, 채취되던 꽃가루의 양도 소량이었다. 소량인 만큼, 금가루인양 소중하게 다루던 그는냉동고에다 꽃가루를 보관했었다. 그는 소량을 이웃과 친척에게 나누어주었었다. 그리고 5일 이내에 그 꽃가루를 신고 배꽃에 한 뼘 거리로 한 땀 한 땀씩, 코바늘로 뜨개질을 하듯, 코를 빠뜨리지 않고, 만 육천 평의 너른 꽃들에게 교배를 시켜야 했다. 농사에는 시기가 있었다. 꽃샘바람이 지나가고 꽃수정작업이 끝나면, 검푸른 바다에서 청새치를 힘겹게 끌고 온 헤밍웨이의 노인처럼, 푹 쓰러져 깊이 잠들곤 했었다.
시간은 언제나 새롭다.
때로 그와 그녀의 꽃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가 만 육천 평의 꽃을 떴던 것처럼,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 귀히 여기며 가꾸던 배나무 밭에서, 급작스런 사고를 당해 떠난 시간을, 불현듯 떠올린다. 그 기억을 소환해 내는 일은 늘 새롭다. 해가 한결같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떨어지는 풍경인데, 날마다 새롭듯 그렇게, 그녀에겐 언제나 그렇다.그가 그렇게, 황망히 떠나고 그의 분투하던 노력을 헛되이 버리지 못했던 어나더 8년, 그녀의배꽃을 뜨던 시간을 돌이켜보는 일도, 언제나 새롭다.
그가 과수원에 살아있을 때 그랬듯이 그녀도, 이웃과 그의 고향 친척분들에게 금가루 같은 꽃가루를 나누어 준 일도, 보람되고 새롭다. 고물고물 하던 삼 남매와 외딴 과수원에서 무섬증도 없이, 오래된 나무둥치이듯,생의 줄기를 과수원에 쿡 박고 살아냈던 그녀 8년의 세월을 돌이켜보는 시간도 다, 새롭다. 오래된 시간이어도,기억을 불러들이는 시간은 늘, 새것 같다.시간 속에 희망이 있어서다.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니듯 시간도 늘 그렇다.닳지 않는다.
시간은 속도가 없다.
속도를 내는 건 사람이다.꽃을 뜰 때 시간은 내 손끝에서 움직인다. 꽃을 한 송이 뜨는 데 걸리는 시간은21분 내외다. 내 손길에 속도를 내면 19분안에도 거뜬히 뜬다. 어물쩡거리면 25분, 30분이 걸린다. 속도를 낼수록,내 몸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듯 숨이 차 온다. 대신 꽃을 뜨는 능률이 오른다. 속도를 늦출수록 주변을 둘러보는 별책부록같은 시간이 늘어난다. 난 보통 영어 유튜브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꽃을 떠 이불을 짓는다. 내가 이불을 뜨는 시간은, 그가 꽃을 떠서 과일농사를 짓던 시간보다 턱없이 짧고 표면적도 수천 배는 더 작다.그럼에도 난 자주 내 꽃을 뜨면서, 그의 꽃을 생각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