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라캉이 뜻하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라 해도, 타인의 욕망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인간의 내면이란 '거울'인 것이다. 즉, 타인의 욕망이 반영되어 나의 욕망을 구성하는 장소인 것이다. - 김용규, 같은 책 <거울> 편 p. 179.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듯, 과수원의 주인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분들의도움 없이 주인은 작업을 추진할 수 없다. 96년도인가. 일본의 과수원을 단체로 돌아본 적이 있는데 그들은 가족이 협력하여 경영할 수 있는 4,5천 평의 토지에서 배농사를 짓고 있었다. 반면, 많게는 삼만 평까지도 재배되던 한국의 과수원은 농업도 경영이다, 라던 한 TV 프로그램의 제목이 제격이었다. 만 육천 평의 과수원을 경영하던 남편은 태생적으로 사람들을 잘 섬겼다. 나 또한 훈련이 되었을까. 공무원시절에 한마을의 행정을 학급의 담임처럼 맡아서 7년을 근무한 이력을 지닌 나도마을사람들을 섬기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그 당시 사무실에 출근할 때사람을 섬기라는 교육을 매끼밥먹듯이 받았었다. 쓸개는 시렁에 떼어놓고 오라, 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야 했으니,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같이 왈가왈부하지 않던 습관이 몸에 좀 배어 있었다. 그건 참다행이었다. 집안의 어른이던 큰 시숙께서는 막내 제수에게사람들 앞에서 슬픈 표정 하지 말라고 이르셨고, 나는 따랐다.
그가 떠난 후 인정 어린 마을사람들은 나를 더 후하게 대해주었다. 한 팀을 이루어 과수원 일을 하시던 일꾼들은 인근 과수원 일을 제쳐두고 우리 일부터 끝내주곤 하셨다. 나 또한 최선의 고마운 마음으로 그분들을 섬겨드리긴 했어도, 내가 주인으로 있던 그 8년 동안에 감동이 무르익듯 흐르는 과원이 되어있었다. 능동적인 협력관계에서 작업을 하게 되니 해마다 과일이 대풍년이었다. 가락동에서도 과일의 품질에 합당한 좋은 가격을 매겨주셨다. 그 당시 도매 과일상회의 말없이 우리 농원의 열매를 사주시던 고마운 그 어르신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나에게 농법을 아낌없이 지도해 주시던 농촌지도사 염 계장님과 29명의 든든한 이화회회원들을 떠올리니, 불현듯 가슴이 뜨겁고 찡하다.
물론 주인의 리드가 더 중요하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리더가 일의 디테일을 모르면 일머리의 바퀴가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다. 배꽃의인공수정과 열매솎기와 배봉지 씌우기와 스무회의 농약살포... 태산 같은 일과, 생물이 올바로 자라서 달콤한 열매를 생산되길 기원하고, 수확하여 냉동창고에서도 적정온도에서 상한 과일이 없이 잘 버텨 주기를 희원하는 마음으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요, 밥알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던 날이 많았다. 그 사이에서 세 아이들은 까르륵거리며 건강하게 잘 자라났다. 간혹 두 살배기 막내 몸이 39도까지 올라가서 병원에 입원을 했고, 불현듯 경기를 하여 응급병원행을 했다. 녀석이 두어 달에 한 번씩은 체하여, 동네할머니가내 아가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따주시면 나았다.그런 중에 부끄럽지만 KBS에서 나와 아이들과 배나무를촬영 하여가고, 새농민과 농어민신문에서 기사를 써갔다. 힘든 중에 든감사는 하늘의 그가 돕고 있는 듯 느껴졌다.
그가 떠난 후 첫봄에 난 혹시 과수원을 떠나게 되면 아이들과 더불어 살면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유치원을 생각하며, 방송대학 유아교육과에 들어가 4년간 공부하였다. 하지만 트랙터로 풀을 쳐내어야 하던 거친 과수원일과 아주 작은 색종이를 소꿉장난하듯 접어야 하던 유치원 교사일은 달라서, 두통이 올 정도로 나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작은 일과 거친 일 둘 다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동일했다. 그 당시에도 그가 살아있을 때부터 틈틈이 글을 읽고 써 왔던지라, 수필가로 등단도 했던지라, 그 이력으로 국문과 대학원을 진학했다.
그것을 발판으로 여러 개의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서 신도시에 나가 7년 동안 초중고 학생들에게 글짓기를 가르쳤다. 모지의 편집위원으로서 남의 글을 교정했고, 나의글을 무진장 써댔다. 호주에 와서도 글을 쓰고 읽고 배우기에 진심이었다. 여러 수필가의 서책 리뷰와 몇 수필잡지의 계간평, '호주에서 온 편지'라는 타이틀(에세이 포레)로 3년간 수필을 연재하였고, '남홍숙의 번다버그 풍경(현대수필)'으로 2년 동안다른 연재를 맡기도 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떠나고 난 후, 나의 취미는 공부가 되어있다. 미래의 행복을 바라서라기보다는, 하루하루 오늘을 살아내기 위하여 그리한 것일 터. 그럼에도 나무가 푸른 잎을 떨구지 않는 건, 어제보다 깊어지는 오늘이란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노예는 일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극복함으로써 자신을 고양(aufgehoben)시키고 격상시킨다. 결국 노예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노예에게 의존하고 있는 주인과는 달리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증법적 발전을 통하여 역사 발전은 결국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일하는 노예'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주인은 불행하고 '실존적 무기력'에 빠지는 한편, 노예는 자신의 신분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하고 진정한 만족을 얻을 가능성을 획득하게 된다. - 김용규, 같은 책 <거울> 편 p.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