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네 Feb 22. 2024

별 돋는 이국의 밤을 내 평생 연모하리라 •5

- 5 <노스탤지어> 편



2주 우리 집에 머물기로 했던 그녀가 온 지 1주일이 되었다. 우린 까불고 떠들며 밥을 같이 먹고 았다. 다른 두 들도 와서 내가 쿡한 월남쌈으로 같이 디너를 했다. 난 유쾌한 시간 속에서도 몸은 좀 피로감이 느껴졌으며  정신어수선했다. 아무리 절친이라 해도 우리 집에 온 손님이니 신경 쓸 일이 다. 대신 아이에게 집중할 엄마의 시간이 반감되어 있었다. 건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아이에게.


설상가상으로 그날 새벽, 내 아들이 별이 된 그 새벽 두 시에 나는 한국 지인과 같이 책 표지의 디자인에 관하여 의논을 나누고 있었다. 그녀로부터 전화가 온 그 새벽에 아들이 내 방으로 들어왔는데 나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 순간을 보다 정치하게 그리면, 내가 전화기를 집어드는 찰나에 아들이 방문을 열었다. 낮에 바쁘게 지냈 그녀가 새벽에라도 전화를 하여서 어드바이스를 해 주니 감사한 마음었다. 히 표현하면  가지 사안 중, 난 내 아들의 방문을 뒤로 밀쳐두고 있었던 것이다.


책 표지의 손톱만 한 새 한 마리, 그것이 뭐가 그리 중하다고, 위로 옮길까 그냥 둘까에 대하여, 새벽 두 시 난 지껄이고 있었는지. 그 밤의 나 자신을 생각하면 할수록, 나 스스로에게 분통 터지는 순간이었다.


신의 계획된 순간이었을까.


그 당시 단 한 번도, 새벽에 전화기를 잡고 그, 아니 누구통화한 적이 전혀 없었는데 왜 전화기가 울리던 순간, 아이가 내 방에 발을 들여놓았었을까. 공교롭게도, 그날 밤엔 호주에서 쓴 필집과 평론집, 출간할 책 두 권 작업 맨 마지막  밤이었다. 


화를 끊고 아들의 방을 노크하여 아들의 동태를 살피었다. 아이는 평소보다 기분이 다운되어 보였다. 그럼에도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곤 난, 꿈에도 상상을 못 했다. 더군다나 아이는 나를 따라 내방으로 건너와서 어미의 책표지를 같이 보면서, 새 한 마리 그까짓 거는 아무도 신경 안 쓴다고 그냥 두라고 했었다. 난 내 아들의 표현이 든든했다. 그리고  아이는 옆방인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책 교정지를 더 보다가 깊은 잠 속으로 빠졌다.


백번을 돌이켜 생각을 해보아도, 무지 꿈은 아 것 같. 내가 곤하게  사이에 아들이 울었다. 두어 번, 나를 부른 것 같다. 엄마, 엄마. (...) 그리고 얼굴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끌어올려주고, 어미의 얼굴에 별빛 닮은 눈물 한 방울을 뚝 떨군 듯싶다. 어미의 뇌리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그 느낌이 아직, 축복처럼 화인처럼 하면서도 오롯이 남아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우리 집 손님, 그녀와 아침상을 차려서 즐겁게 상을 물린 후, 녀는 외출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아들을 깨우러 아들 방으로 들어갔다. 나의 아들은 자기 아빠별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난 후였다. 삶과 죽음 사이가 눈꺼풀 사이만큼이나 짧디 짧음을, 나는 목격해야 했다. 낙타가 드는 바늘귀보다 더 어려운 길을 단숨에 따라가는 곳이 천국임을, 나는 목도했다. 아이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던 우울이라는 병에 걸려 간 거였다. 애틋한 주검 앞에 나의 세상이 그대로 멈춘 것 같았다. 씨도 불현듯 봄비를 뿌렸다.


을 보마당에서  출간을 할지 말지에 대해 깊이 고심했. 아들한테 난 너무 미안한 일이 많았다. 러나 판사와의 약속도 있고, 여러모로 생각을 해봐도 발간을 하는 게 도리에 맞는 것 같았다. 의 마지막 에다 추모시를 어미 마음으로 쓰고 출간하였다.


 아빠별과 합장한 그 아담하고 깊고 드넓고 아름다운 곳으로 어디로든 훨훨 자유한, 이젠 아들손과 아빠손을 서로 맞잡고 어디라도 날아갈 수 있을 두 부자의 터, 그 에다 지어미와 어미의 출간책 두 권도 함 넣어 주어셨다고, 큰 시숙님께서 국제전화로 기별을 해 주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 죄송함과 감사함과 비통함으로 눈물이 오래 나왔다.


흑의 밤에도 과 작은이 뜨는 이국의 밤을, 나는 아직도 사랑한다. 별과 작은별은 이제 서로 지척에 있다. 그러니 외롭지 않을 테다. 미 또한  돋는 국의 밤을, 내 평생 연모하리라.




작은 별이 된 아이 앞에서 엄마가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 : 하나, 아이가 우울하기 이전에, 아이의 내면을 깊숙이 올바르게 살피지 못한 점. 둘, 아이가 우울할 때,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점. 셋, 아이가 떠나기 전날 밤에, 아이의 내면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고 위로해주지 못한 점. 넷, 내 아들이 참 괜찮은 사람이었음을, 진정 인정해주지 못했던 점.



그곳은 우리의 영혼이 온 곳이며 기꺼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써 육신의 고향보다 더욱 근본적이라는 의미에서 '본향'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대화록 파이돈(Pbaidon)에서 보면,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죽음에 임박한 백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하게 운다. 그러나 그 백조의 울음은 슬픔의 노래가 아니고, 예언의 신이요 "의신"이며, 해방과 음악의 신인 아폴론의 나라, 곧 그의 고향으로 돌아감에 대한 기쁨의 찬가이다. (...) 나라고 해서 백조보다 덜 기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 김용규, 같은 책, <노스탤지어> 편, p.251


별에 대한 긴 글을 5회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작은별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써보았습니다. 이렇게라도 이름 지어놓으니 마음이 놓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도, 참이 든 비단보따리를 풀어 정리한 느낌이 듭니다.  우울이 병이니 잘 치유하여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시절과 어미를 잘못 만나 먼저 떠난 저의 자식에게 미안함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행여, 이 글을 보신 분들께서는 부디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빌겠습니다. 나의 작은별이 떠난 후의 글은 브런치북 <잊는 데 늦는 건 없어>와 <잊는 데 늦는 건 없어•2>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정에 늘 평화와 가없는 평안이 이어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새벽 마당에서 이 글을 수정하고 있다가 다섯 마리의  새떼와 조우하였습니다. 새벽 5시 33분이었습니다. 가족은 흩어져있을 때도 한자리에 있습니다. 그건 영원한 진리입니다.

이전 12화 별 돋는 이국의 밤을 내 평생 연모하리라 •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