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희생>(The Sacrifice)은 타르코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이다. <희생>이 세상에 공개되고 '칸 영화제'에서 격찬을 받았던 1986년 그해, 불과 54세의 젊은 나이로 그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 타르코프스키의 말에 따르면, 그가 이 작품에서 그리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삶을 파괴하며 구제할 길 없이 멸망으로 이끄는 삶의 메커니즘을 온 세계에 폭로하고 전향을 호소함으로써 인류를 위한 구원의 마지막 가능성"을 찾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김용규, 앞의 책, <희생> 편 p. 289.
희생엔
멀리 보고
널리 품어 안는
희망이 잠복한다.
그렇다고,
희생이라는 첫삽을 뜰 때부터그리대단한 행보는아닐 터.예컨대희생이란,'모든 이기주의적인 관계에 대한 전면적인 포기'이며 '물질세계와 물질세계의 굴레를 벗어남.'의 거대담론?
노란,
배추 속처럼꽉 찬모든과 전면적이라는이빡빡한 명제가 전제된 희생은너무완전한완벽을 요구한다.범인이도달하기에는 요원하다. 모든 그리고 전면적이라는, 100% 안에 편입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여기서 희생은 하늘에 뜬 별빛 같거나 화중지병처럼 느껴진다.모든 전면적에 치여출발부터 희생은 압사할 거 같다.그래,희생은 아주사소한일부터 시작된다.바다가 물 한 방울로 시작하듯, 희생은 자신도 모르게 시작되는 거다.
가령,
'어느 날 파베라는 수도승이 말라죽은 나무 한 그루를 산속에다 심어놓고, 3년 동안 매일 물 한 동이씩 부어주라고 일렀다. 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까지 주라 하였다. 그런데 물가는 산에서 너무 멀리 있었다. 책무를 맡은 요한은 저녁때까지 다시 돌아오려면 아침에 일찍 출발하여야만 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놀랍게도3년 후부터 나무에서 싹이 돋아나고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노수도승은 이 열매를 순명의 열매라 불렀다.'
만일,
죽은 나무에서 열매가 맺히지 않았더라도,한 가지 일에다3년을 하루같이 지성을드렸으니 우주심이 동했을터. 하루하루 빛처럼 스치고 바람처럼 지나간시간은그의 온몸으로스며들었으리라. 시간의 지문이요한에게 새겨졌으리라. 돌탑을 쌓듯 그의 몸 안에들인인내는현재와 미래를 세우는 데도요긴할테다.그 3년은 순명의 열매만큼이나 고귀한,그의 몸시가 되리라.
어쩜,
비밀스러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꺼내어 쓰는 일도 희생일까. 많은 이기적인 마음을 대부분 포기할 수 있는 일도 희생일까.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이제 와서 새삼스러운 과거를 꺼내어 생뚱맞은 글을 써서 무슨 부귀영화를 얻겠다고 시작했지. 내가 왜, 고요히 잘 묻혀있던아픈 손가락의고름덩어리를 다시 들춰내어서 쓰리게 짜내고 있을까. (...) 별별 별생각이 들었다.모든, 전면적인 이기심의 포기가 아니라, 그것보다는 낮은 급수의많은, 대부분의 이기심을 포기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참을 세상에 펼쳐놓는 일에도 일말의 희생이 좀 따라야 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깊어진다》를 연재하면서 나의 에고를 내려놓는 데 좀 힘이 부쳤다. 때때로 마음이 아팠다. 어떤 때는 눈물이 나왔다. 그리움이 몰려왔다. 그렇게 자아를 내려놓고 낮아진 가슴으로 쓴나의 서사가, 가을낙엽이 되면 좋겠다.거름이 필요한 어느 나무의 발치에 다가가 부토가 되면 좋겠다. 어느한 나무의 뿌리가 깊어지도록 힘을 보태주면 좋겠다. 봄나무 밑둥치로 내려가 새싹이 움트게 하고, 여름철 푸른잎사귀가잘자라고,가을열매가옹골차게 맺히도록 하는희생엽이 되길희원한다.힘을 잃은 누군가의 곁이 되어작으나마 생기를 불어 주면 좋겠다.
•희생은 때로 별책부록 같은 거.
"외적으로자유한 그러나 내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한' '강한 그러나 도덕적으로 몰락한.' 영화 <희생>에서 화려한 인물아델라이아가 되는 일은 천박하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흔들리며 막살아도 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와 반대의 인물인 마리아를 보자.주인공 알렉산더의 집에서 하녀의 일을 하고 있던 그녀는 '외적으로 자유롭지 못하고 그러나 내적으로 자유로운' '연약한 그러나 도덕적 확신에 찬.' 인물이다.'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를 구하기 위하여어려운 일을내면으로 고요히 내려 앉히어순명한캐릭터이다.조용히 희생을 한 사람.
그렇다면,
두 인물 중 어느 길을 택하겠는가.
난,
내적으로 당당한 마리아를 택하여 그녀의 옷깃을 부여잡는 흉내나마내어보았다. 그럼에도 시간이걸리고심적 고충이 좀있었다.하지만 찬찬히들여다보니 희생은,나를 버리는 게 아니었다.희생은,
나와 주변을 다듬고 보듬는 일이었다.그곳엔 깊은 희망이 잠복한다.
타르코프스키의 말년 관심사는 '인간과 세계의 구원'이었다. 그것은 종교적이며 이상주의적인 영화작가로서 그가 평생을 두고 부단히 천착했던 근원적 문제였지만, 그는 영화 <노스탤지어>를 제작하면서부터 특히 이 문제를 작품 속에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기 시작했다. 김용규, 같은 책, <희생> 편, p. 290.
From QLD Art Center Exhibition
본문의 작은따옴표 속 문장은 《오늘은 어제보다 깊어진다》의 모티브로 삼은 책, 김용규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희생> 편을 참조 혹은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