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김종도 씨에게 말했다. 환자분은 못 걸을 이유가 없다고, 못 걷는 건 오직 심리적인 문제라고 했다. 몸 군데군데, 침대에서 떨어지며 생긴 타박상은 있어도, 그건 길어야 2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멍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럼에도 김종도 씨는 걷지 못한다. 한 발 내딛는 순간,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 그건 지선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종도의 일상은 단숨에 무너졌다.
은혜는 고민했다. 이게 꼭 이렇게만 쓰일 일이었을까? 죽은 오빠가 바란 건, 이게 맞을까? 이대로 지선도 괜찮을까? 은혜는 복수만큼 무거운 짐이 자신의 어깨로 내려와 있음을 느껴졌다. 그건 지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랬다. 지선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가 죗값을 치른 건 통쾌했지만, 그 후에도 긴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다. 아빠의 연구를 이렇게만 사용하는 게 옳은 일일까? 지선은 묵은 짐을 내려놓고 새로운 짐을 받았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불행이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
그 순간 또 문자가 왔다. 수신 거부를 해도 줄기차게 번호 바꿔가며 연락해오는 김기호 씨다. 100억이라, 100억, 100억... 생각해보게 되는 숫자다. 그 돈 이상의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까? 아빠의 연구를 다이너마이트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연구결과가 사라지지 않고 좋은 일에 쓰일 수는 없는 걸까? 지선은 고민했다.
지선의 고민을 듣게 된 은혜는 생각했다. 마음의 짐을 갚아보자. 꿈을 방문하는 일이, 타인을 공격하는 게 아닌 다친 이를 치유하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 수는 없을까? 뭔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눈을 감고 스르륵 잠든 후, 은혜는 꿈속에서 경석을 만났다. 그리고 오래도록 대화를 나눴다. 경석은 마치 살아있는 것만 같다. 꿈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혼동스러울 정도다. 이런 경석과의 만남을 지선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죽은 이를 꿈속에서 만난다는 판도라의 상자는 가급적 오래도록 봉인하고 싶었다.
경석이 거주하던 주택가 모퉁이 작은 2층 단독주택 대문에 간판이 하나 걸렸다. '꿈 치유 연구소'.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상담사인 황은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황지선이 정체불명의 작은 연구소를 차린 것이다. 100억의 수익은커녕 의뢰하는 손님이 있을 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간판은 내걸렸다.
자, 이제 영업 개시합니다.
치료를 원하시나요? 예약을 먼저 해주세요. 당신의 꿈에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