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메커니즘]02. 사랑과 섹스 ②
(이전 글 : 사랑과 섹스 ①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연결)
■ 섹스는 섹스라고 외쳤던 그녀
대학교 때 꽤나 괄괄한 여자 동기생 한 명이 있었다.
그녀는 우리는 포도주와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서슴지 않고 말하고 다니던 그런 친구였다. 그런데 그녀가 포도주와 빵 말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영혼이니 정신이니 이런 게 아니라, 바로 '섹스'였다.
성. 섹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가장 많을 것 같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처럼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여전히 쉬쉬하며 입 밖으로 차마 꺼내기 힘든 말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뿌리 깊은 유교적 사고방식에 찌들어서 유독 여성에게 혹독한 잣대를 들이댔던 약 20여 년 전 그 당시에도, 그녀는 서슴지 않고 '섹스는 섹스다'라는 말을 당당하게 내뱉었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두고 노는 애라는 둥, 까졌다는 둥, 몸을 굴리는 애라는 둥 비아냥 거리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고, 나 역시도 단지 성욕 때문에 아무나와 하룻밤 상대를 찾는다는 것을 정서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본능을 컨트롤하는 이성, 통제의 힘이고, 짐승이 아닌 인간이라면 적어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상대여야 하지 않나?라는 게 내가 갖고 있었던 섹스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 섹스는 사랑이라고 여겼던 나
난 섹스를 사랑이라고 여겼고, 그녀는 섹스는 그냥 섹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난 그런 그녀의 섹스 라이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도 저렇게 사는 건 아니지 않나? 라며 마음으로 소리 없는 혐오와 비난을 퍼부은 것도 사실이다.
난 사회가 '윤리' '도덕'이라고 규정해 놓은 애매한 잣대를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서 그녀에게 가차 없이 들이대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 역시도 결혼 전에는 순결해야 한다는 또 다른 잣대를 지닌 어떤 사람으로부터 소리 없는 비난을 줄곧 받아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각자만의 잣대를 들고 '옳다' '그르다'라고 판단하며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밥먹듯이 일어나는 현상이라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도 점차 '성'에 대한 인식이 개방되면서 유튜브, TV, 팟캐스트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듣기에 차마 민망한 성에 대한 이야기가 속 시원하게 공론화되기도 하고, 지난 2015년에는 국민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성에 대한 정부의 억압, 통제가 조금씩 풀리고 있는 실정이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너무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성에 대한 보수적 윤리의식이 전반적으로 바뀌는 데는 (나를 포함해서)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 보인다.
■ 섹스=사랑? 인식조차 없는 메커니즘에 대한 오해
이제와 돌이켜보니 내가 그녀를 비난하고 혐오를 느꼈던 건 섹스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 무지 때문이었다. 이것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섹스에 대한 오래된 오해, 무지이기도 하다.
바로 '섹스=사랑'이라는 등식에 오해이다.
'섹스가 사랑'이라는 게 오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의아할 것이다. 그리고 섹스가 사랑이 아니라면 섹스는 도대체 무엇이고, 사랑은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지 않은가?
(다음 글 : 사랑과 섹스 ⑤ 짝짓기의 다양한 모습들)